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으면 가족력을 묻는다. 가족 중 특정한 질환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질환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유전적 영향도 있지만 가족은 생활습관도 비슷하다. 오한진 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가족력이 있다고 그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발병 위험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며 “금연, 절주, 규칙적 운동 등 바람직한 생활습관을 통해 가족력 질환에 걸릴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대개 3대(조부모, 부모, 형제)에 걸쳐 같은 질환을 앓는 환자가 2명 이상이면 가족력이 있다고 판단한다. 집안에 같은 질환자가 많다는 점에서 유전성 질환과 혼동하기 쉽지만 유전성 질환과 가족력은 다르다. 유전성 질환은 특정 유전정보가 자식에게 전달돼 질병이 생기는 것이다. 다운증후군, 혈우병, 적녹색맹 등이다. 이들은 사전 검사를 통해 유전 확률을 예측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 예방할 방법은 없다.

가족력은 직업, 사고방식, 생활습관, 식사, 주거환경 등 비슷한 환경을 공유해 나타난다. 오 교수는 “일종의 후천적 유전자로, 가족력 질환은 생활습관을 교정하거나 조기 진단을 통해 치료하면 예방 가능하거나 발병 시기를 늦출 수 있다”고 했다.

대표적 가족력 질환은 고혈압, 성인 당뇨병, 심장병, 고지혈증, 뇌졸중, 비만 등이다. 유방암, 대장암, 폐암, 위암 등 일부 암도 가족력 질환으로 꼽힌다. 부모나 가족 중 심장병 환자가 있으면 심장병 위험이 다른 사람보다 2배 이상 높다. 심장병을 일으키는 주원인은 흡연, 고지혈증, 고혈압, 비만, 운동 부족 등이다. 이런 요인과 가족력이 합쳐지면 발병 위험은 더욱 높아진다.

고혈압도 마찬가지다. 부모 모두 정상 혈압일 때 자녀에게 고혈압이 나타날 확률은 4%에 불과하다. 부모 중 한 명이 고혈압일 때는 30%, 두 명 모두 고혈압이면 50%까지 올라간다. 어머니에게 골다공증이 있으면 딸에게도 골다공증이 생길 위험이 2~4배 높아진다. 부모 중 한 명이 비만이면 자식이 비만일 확률은 30~35% 정도다. 두 명 모두 비만이면 비만 위험은 60~70%까지 높아진다. 유전적으로 기초대사량이 낮거나 체지방 저장 정도를 인식하는 뇌의 기능이 둔감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이 유전돼 비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당뇨병도 가족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질환으로 꼽힌다.

암도 마찬가지다. 전체 대장암 환자의 10~30%는 가족성 대장암 환자다. 부모나 형제 중 대장암 환자가 한 명 있으면 발병 위험은 2~3배 높아진다. 대장암 환자가 두 명이면 4~6배 정도 높다. 직계가족 중 유방암 환자가 있으면 유방암 발생 위험이 2~3배 높다. 직계가족 중 폐경기 이전 유방암에 걸린 사람이 한 명 이상 있으면 암 발생 위험이 최고 9배까지 높아진다. 조기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가족력 질환이 있으면 가족 모두 식생활을 바꾸고 운동해야 한다. 고혈압 가족력이 있으면 과식, 과음, 짜게 먹는 습관을 바꿔야 한다. 골다공증 가족력이 있으면 신체 활동을 늘리고 인스턴트식품을 줄여야 한다. 직계가족 중 암 환자가 있으면 40대 이후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위·대장 내시경, 유방 촬영술 등을 해야 한다. 가족 중 40세 이전에 성인병이나 암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보다 일찍 검진을 시작해야 한다.

오 교수는 “질환이 부모 대에는 나타나지 않고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며 “조부모 대까지의 가족력을 미리 확인하면 막연한 불안감을 없앨 수 있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