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도 반한 달항아리 그림…"도공의 魂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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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人스토리
'백자 달항아리 화가' 최영욱 씨
'백자 달항아리 화가' 최영욱 씨
17~18세기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는 하얀 바탕과 둥근 형태가 보름달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둥실하고 풍만한 어머니의 뽀얀 살결 같은 푸근함이 매력적이다. 하얀 달덩이처럼 미소를 뿜어내는 백자에 괜스레 안겨보고 싶어진다. 모태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은 아닐까.
중견 인기 서양화가 최영욱 씨(54)는 30대 후반부터 이런 달항아리의 넉넉한 미학을 화폭에 재현하며 숨가쁘게 달려왔다. 한 점 문양이나 채색도 없이 소박하지만 보름달처럼 넉넉하고 기품있는 자태를 표현해 왔다.
10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시작하는 ‘최영욱전(展)’은 달항아리를 친구 삼아 화폭에 껴안은 화가의 삶이 얼마나 치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자리다. 1, 2층 전시장을 채운 23점의 달항아리 그림은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을 재현해낼 뿐만 아니라 이를 매개로 인간의 삶과 인연에 대한 본질을 탐구한 근작이다. 엷은 회색 빛을 머금은 달항아리 특유의 그림이 일품이다. 최근 작업실에서 만난 최씨는 “달항아리의 오묘함에 빠져 몸부림친 지난 세월을 생각해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백자의 밝은 에너지를 표현하는 동시에 도공의 예술혼까지 잡아내려 애썼다”고 말했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최씨는 39세에 달항아리 재현에 첫발을 내디뎠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술학원을 운영한 그는 200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영국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달항아리에 시선이 꽂혔다. 선비들이 달항아리를 앞에 두고 즐겼을 그 맛과 분위기를 살리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당장 붓을 들어 귀 닫고 입 막은 채 묵묵히 붓질을 하며 ‘달항아리 회화’에 매달렸다. 아파트 문화에서 도자기 그림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찾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일부 안목 있는 외국인들이 ‘웰빙 인테리어’로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면서 최씨는 국내보다 해외 화단에서 더 유명해졌다. 2010년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열린 ‘스코프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 최씨의 작품 세 점(4000만원)을 구입한 게 기폭제가 됐다. 이듬해 7월 달항아리 그림에 반한 빌 게이츠는 최씨 가족을 시애틀에 지은 빌&멀린다 게이츠재단 건물 완공 기념식에 초대했다. 곧바로 그의 이름 앞에 ‘빌 게이츠가 선택한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후 스페인과 룩셈부르크 왕실, 필라델피아 뮤지엄 등이 최씨의 작품을 잇달아 구입하고 해외 유명 아트페어에서 그의 그림이 지속적으로 판매됐다.
최씨는 “김환기와 도상봉 화백도 평생 달항아리에 반해 그림 소재로 즐겨 활용했다”며 “이번 작품들은 시를 쓰는 마음으로 조상의 멋과 슬기를 되살리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달항아리는 볼수록 온기가 느껴집니다.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겪은 사람에게 풍기는 단순한 멋이라고나 할까요. 진정한 모노크롬(단색화)은 조선백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씨는 실제로 그림을 통해 한국적 모노크롬을 아울렀다. 극도의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면서 대상과 배경 경계를 살며시 무너뜨려 극적 리듬감을 부여했다. 대상의 느낌과 공간감에 주안점을 두고 회화의 본질에 접근했다.
그에게 달항아리는 세상 사람들의 인연과 운명을 보여주는 창(窓)이기도 하다. 극사실주의적 기법과 실낱같은 선으로 모노크롬을 지향했지만 그의 그림에는 인생살이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과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달항아리의 표면에 가는 붓으로 무수한 빙렬(氷裂)을 그려 만났다 헤어지고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는 인생길을 은유했다. 빙렬은 도자기가 가마 속에서 구워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균열을 말한다. 불교에서 ‘업보(業報)’를 뜻하는 ‘카르마(karma)’를 모든 작품의 제목으로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자기의 균열을 하나하나 그리면서 삶은 우리가 의도한 데로만 가지 않고 어떤 운명 같은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고 그는 설명했다.
최씨는 올해까지 나온 작품이 겨우 400점 남짓일 정도로 스스로에게 까다롭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아 내버린 그림만 수백 점에 달한다”며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 감을 얻었지만 어떻게 해서 달항아리의 본질에 접근하게 됐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전시는 오는 25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중견 인기 서양화가 최영욱 씨(54)는 30대 후반부터 이런 달항아리의 넉넉한 미학을 화폭에 재현하며 숨가쁘게 달려왔다. 한 점 문양이나 채색도 없이 소박하지만 보름달처럼 넉넉하고 기품있는 자태를 표현해 왔다.
10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시작하는 ‘최영욱전(展)’은 달항아리를 친구 삼아 화폭에 껴안은 화가의 삶이 얼마나 치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자리다. 1, 2층 전시장을 채운 23점의 달항아리 그림은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을 재현해낼 뿐만 아니라 이를 매개로 인간의 삶과 인연에 대한 본질을 탐구한 근작이다. 엷은 회색 빛을 머금은 달항아리 특유의 그림이 일품이다. 최근 작업실에서 만난 최씨는 “달항아리의 오묘함에 빠져 몸부림친 지난 세월을 생각해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백자의 밝은 에너지를 표현하는 동시에 도공의 예술혼까지 잡아내려 애썼다”고 말했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최씨는 39세에 달항아리 재현에 첫발을 내디뎠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술학원을 운영한 그는 200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영국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달항아리에 시선이 꽂혔다. 선비들이 달항아리를 앞에 두고 즐겼을 그 맛과 분위기를 살리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당장 붓을 들어 귀 닫고 입 막은 채 묵묵히 붓질을 하며 ‘달항아리 회화’에 매달렸다. 아파트 문화에서 도자기 그림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찾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일부 안목 있는 외국인들이 ‘웰빙 인테리어’로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면서 최씨는 국내보다 해외 화단에서 더 유명해졌다. 2010년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열린 ‘스코프 마이애미 아트페어’에서 최씨의 작품 세 점(4000만원)을 구입한 게 기폭제가 됐다. 이듬해 7월 달항아리 그림에 반한 빌 게이츠는 최씨 가족을 시애틀에 지은 빌&멀린다 게이츠재단 건물 완공 기념식에 초대했다. 곧바로 그의 이름 앞에 ‘빌 게이츠가 선택한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후 스페인과 룩셈부르크 왕실, 필라델피아 뮤지엄 등이 최씨의 작품을 잇달아 구입하고 해외 유명 아트페어에서 그의 그림이 지속적으로 판매됐다.
최씨는 “김환기와 도상봉 화백도 평생 달항아리에 반해 그림 소재로 즐겨 활용했다”며 “이번 작품들은 시를 쓰는 마음으로 조상의 멋과 슬기를 되살리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달항아리는 볼수록 온기가 느껴집니다.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겪은 사람에게 풍기는 단순한 멋이라고나 할까요. 진정한 모노크롬(단색화)은 조선백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씨는 실제로 그림을 통해 한국적 모노크롬을 아울렀다. 극도의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면서 대상과 배경 경계를 살며시 무너뜨려 극적 리듬감을 부여했다. 대상의 느낌과 공간감에 주안점을 두고 회화의 본질에 접근했다.
그에게 달항아리는 세상 사람들의 인연과 운명을 보여주는 창(窓)이기도 하다. 극사실주의적 기법과 실낱같은 선으로 모노크롬을 지향했지만 그의 그림에는 인생살이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과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달항아리의 표면에 가는 붓으로 무수한 빙렬(氷裂)을 그려 만났다 헤어지고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는 인생길을 은유했다. 빙렬은 도자기가 가마 속에서 구워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균열을 말한다. 불교에서 ‘업보(業報)’를 뜻하는 ‘카르마(karma)’를 모든 작품의 제목으로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자기의 균열을 하나하나 그리면서 삶은 우리가 의도한 데로만 가지 않고 어떤 운명 같은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고 그는 설명했다.
최씨는 올해까지 나온 작품이 겨우 400점 남짓일 정도로 스스로에게 까다롭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아 내버린 그림만 수백 점에 달한다”며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 감을 얻었지만 어떻게 해서 달항아리의 본질에 접근하게 됐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전시는 오는 25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