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고양이의 비밀》(문학동네)은 일상과 취미생활에서 얻는 성취감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온 인간 하루키의 관조적 화법과 재치 넘치는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집이다. 하루키가 장편소설 《노르웨이의 숲》, 《태엽 감는 새》로 대중적 성공을 거둔 직후인 1995~1996년 만화가 안자이 미즈마루의 삽화를 넣어 ‘주간 아사히’에 연재한 에세이 60여 편을 엮었다.
하루키는 2000m를 쉬지 않고 수영한 자신에게 감탄한다. 은행 직원의 친절함에 반해 그 은행의 평생 고객이 되고, 어색한 영어 발음을 들키기 싫어 셀프 주유소를 찾아다닌다. 평범하고 소심한 일상 속 즐거움이 느껴지는 내용이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장수 고양이’이자 하루키가 소설가를 꿈꾸던 시절부터 길렀던 샴고양이 ‘뮤즈’에 대한 세 편의 이야기에선 영특한 반려묘의 일상을 깊게 관찰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이 드러난다.
인기 작가이지만 문단 주류에서 벗어난 자신의 고충을 솔직히 토로하고, 비정한 출판계에서 문학인이 가져야 할 책임감도 담담하게 논한다. 때로는 세상사에 감동하고 때로는 투덜대기도 하는 ‘생활인 하루키’의 글에서 소설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유행처럼 번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하루키가 1986년 소설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서 처음 사용한 이후 종종 에세이에 쓴 표현이다. 바깥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되 휘둘리지는 않으려는 하루키식 개인주의 인생관이 고스란히 담긴 에세이들은 왜 ‘소확행’이 현대인들의 공감을 사며 두루 인용되고 있는지 일깨워준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