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지난 주말 기자간담회에서 “1965년 수교 이래 모든 정권에서 한·일 관계는 순탄치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두 나라 관계가 ‘최악’이라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에서 이달 말 열리는 ‘G20 회의’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부적절하고, 사실에도 맞지 않는 발언이다. 수교 뒤에도 대립과 갈등이 끊임없었지만, 그런 와중에 지속적으로 우호관계를 발전시켜 온 두 나라다. ‘반일 성향’이 컸던 노무현 정부에서조차 양국 간 ‘셔틀 외교’가 펼쳐졌다. 당시 노 대통령은 아침에 일본으로 날아가 고이즈미 총리와 북핵 등을 논의한 뒤 저녁에 귀국하는 실용외교를 선보였다.

청와대는 기자간담회에서 “어떤 근거로 한·일 관계를 최악이라고 보느냐”며 따져묻기까지 했다니, 그 판단력에 의구심이 커지지 않을 수 없다. G20 회의에 초청받아 방문하면서 정상회담 일정조차 못 잡고 있고, 결례 논란을 무릅쓰고 주한 미국대사가 관계개선을 공개 촉구하는 마당에 무슨 근거가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최악이 아니라면 그 근거를 먼저 제시하는 게 걱정하는 국민들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청와대의 안일한 인식은 여당 대표가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얘기를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며 경제실정의 책임을 회피한 일을 연상시킨다. “역대정권서도 나빴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이라면 국정책임자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현실을 회피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진실의 순간이 닥쳤을 때 충격파만 커질 뿐이다. 동북아 외톨이 신세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방관자적 외교부터 당장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