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양심의 자유는 어디까지 존중해야 할까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한 사건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대체복무 법안도 준비 중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견해 대립은 어느 정도 수습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 “군대 가는 사람은 양심이 없어서 가느냐”는 거친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양심범’이나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의 ‘양심’에 ‘착하고 훌륭하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자신의 행위는 성희롱이 아니라고 믿고 있는 가해자에게 성희롱 행위를 사과하도록 강제하는 징계는 양심의 자유에 반한다는 판결이 선고됐다. 법원은 성희롱의 존재를 인정했고 다른 징계는 유효하다고 판단하면서도 공개사과 부분은 허용될 수 없다고 봤다.

각자의 신념체계, 윤리의식, 사상 등은 인간의 존엄성이나 정체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란 이런 내심의 것들을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하거나 그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그런 신념이나 사상이 얼마나 훌륭하고 보편적인지는 따지지 않는다.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유아에 대해 부모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수혈을 거부한 결과 다른 적절한 치료 수단이 없어 아이가 사망한다면 그런 행위도 양심의 자유로 보호될까? 어느 정도 자기 의견을 밝힐 수 있는 어린 자녀가 자신도 모태신앙에 따라 부모님 말씀대로 수혈을 거부한다고 말하면 그때는 어떨까? 담당 의사가 ‘의사란 환자의 목숨을 구하는 사람이며 반드시 수혈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는데, 병원 경영진이 부모와 무수혈 원칙에 합의하고 의사에게 그렇게 지시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프랑스에서 의식이 없는 환자의 배우자와 부모 간에 연명치료 중단을 놓고 다투다가 마침내 법원이 연명치료 중단을 허가했는데 막상 담당의사가 치료 중단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 미국에서는 법원 국장이 동성혼에 대한 결혼증명서 발급을 거부하다 법정모독으로 구속됐는데, 발급을 약속하면 석방한다는 단서가 붙었던 사례가 있다.

사라졌던 홍역이 20년 만에 창궐하자 뉴욕시는 백신접종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일부 신자가 접종을 거부하며 법적으로 다투기 시작했다. 종교적 신념에 반하고, 환자의 동의에 기초한다는 의료원칙에 어긋나며, 격리 치료 등 다른 조치가 가능함에도 부작용의 위험이 있는 접종을 강요하는 것은 과잉대응이라는 것이다. 전염병의 경우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이 위험해진다는 점에서 공중의 이익이 매우 크지만, 이 문제조차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사형제도는 법적으로 아직 살아있다. 엄격한 기준 하에 검찰은 사형을 구형하고 법원은 사형을 선고하는데 막상 이를 집행할 직무상 의무를 지는 법무부는 집행하지 않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형 집행에 대한 결재자와 실행자, 입회자에 이르는 많은 사람의 양심의 자유도 문제될 것이다. 이 사람들은 양심의 자유를 위해 사임해야 할까?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근본적,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그 전망은 여전히 요원하다. 이와 유사한 문제들은 매우 넓은 범위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서 일관된 입장 정립을 위해서는 사안마다 상당한 심사숙고를 요한다. 진영을 나눠 단순하고 선명하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각자의 양심은 존중돼야 하며 남이 그 양심의 선악이나 고결성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특히 국가권력이 나서서 양심의 내용을 재단하고 도덕적 기준을 제시해 개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금지된다. 그러나 문화상대주의가 모든 야만적이고 비인도적인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듯 양심의 자유도 무소불위는 아니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부모가 미성년자를 대신해 양심의 자유를 행사하겠다고 하는 경우에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들은 우리 공동체의 근본적 가치와 관련되는 것이므로 열린 마음으로 진지하고 지속적인 논의가 이뤄져 성숙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