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인 송환법은 자치권 포기"…홍콩 시민들, 反中 감정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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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목 특파원 홍콩 시위현장 긴급 르포
법안 강행에 103만명 거리로
홍콩 반환 후 최대 규모 시위
법안 강행에 103만명 거리로
홍콩 반환 후 최대 규모 시위
10일 홍콩 시청사와 시의회(입법회) 일대는 그야말로 폭풍전야였다. 평소보다 많은 경찰이 교차로 등에 배치돼 수상한 움직임을 경계했다. 거리 곳곳에 떨어진 ‘악법 반대’ 등의 푯말이 이날 새벽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서 벌어진 격한 충돌을 떠올리게 했다. 회사원 판추이잉 씨는 “중국 정부가 홍콩 자치권을 짓밟고 있다”며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분노했다.
홍콩 전역이 반(反)중국 정서로 들끓고 있다. 홍콩 지역에 있는 범죄 용의자를 중국 본토에 인도할 수 있게 하는 ‘범죄인 인도법안’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전날 이 법안을 반대하는 시위에 103만여 명이 참여했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그럼에도 홍콩 정부가 법안을 강행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사태는 악화일로다. 이번 사태는 12일 홍콩 시의회의 표결 결과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홍콩 행정부 “법안 철회 거부”
AFP통신 등에 따르면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범죄인 인도법안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며 강행 의지를 나타냈다.
지난 9일 홍콩 시내엔 주최 측 추산 103만 명이 모여 범죄인 인도법안 개정 중단과 람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홍콩 인구가 740만 명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홍콩 시민의 7명 중 한 명꼴로 시위에 참여한 셈이다. 시위대는 홍콩 빅토리아공원에서 출발해 코즈웨이베이, 완차이를 지나 홍콩 정부청사까지 행진했다.
홍콩 현지 매체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03년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때와 같은 저항의 분위기가 홍콩에 퍼졌다”며 “홍콩인들은 자유를 지키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고 전했다.
홍콩에선 2003년 7월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와 2014년 6월 일명 ‘우산혁명’ 시위가 있었다. 각각 최대 50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시위대가 우산으로 경찰의 최루액 분사를 막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우산 혁명’은 홍콩 행정장관의 완전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79일이나 이어졌다.
이번 법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9일 홍콩 시내의 대규모 집회 당시 뉴욕 토론토 등 세계 12개국 29개 주요 도시에서도 동시다발적인 집회가 벌어졌다. 시위대 “홍콩 독립성 위배”
범죄인 인도법안은 중국과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들을 넘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해 2월 대만에서 벌어진 홍콩인 살인사건이 계기가 됐다. 홍콩법은 영국 속지주의(영외 발생 범죄 불처벌)에 따라 타국에서 발생한 살인죄를 처벌할 수 없다. 홍콩 정부는 대만 문제를 다루면서 중국, 마카오 등에서도 용의자를 소환하도록 법안을 정비했다.
그러나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즉각 반대했다.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을 악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홍콩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홍콩은 1997년 중국 반환 이후 특별행정구로서 2047년까지 사법자율권을 보장받았다. 홍콩 법조계는 “홍콩 반환 20년이 지나도록 중국 본토와 범죄인 인도 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것은 단순한 행정 착오나 실수가 아니다”며 “그만큼 중국 본토의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이 깊다는 증거”라고 반발했다.
홍콩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간섭이 나날이 심해지는 것도 이번 시위가 격화한 요인으로 꼽힌다. 그동안 ‘홍콩의 중국화’를 강행한 중국 중앙정부에 대한 반감이 쌓였다는 얘기다. 올초 홍콩 시의회는 ‘국가법’ 제정을 추진했다. 홍콩 내 공식 행사에서 중국 국가가 울려퍼질 때 기립하지 않거나 야유를 보내면 처벌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反중국 정서’ 터졌다
주요 외신들도 “이번 시위는 범죄인 인도법안을 계기로 터졌지만 근본적으로는 반중국 정서가 터져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우산혁명 시위가 정부의 양보를 끌어내지 못한 이후 중국 공산당은 홍콩에 점차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고 전했다. 5년 전 우산 혁명 당시 시위를 이끌었던 지도부는 공공소란죄 등의 명목으로 징역형이 선고됐고,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홍콩민족당은 강제로 해산됐다.
홍콩 정부는 법안 적용 대상을 축소하는 등 법안 일부를 수정하며 ‘달래기’에 나섰지만 시민들의 반발을 잠재우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번 시위는 정치적 측면 외에 사회·경제적 요소도 크기 때문이다. 급등한 홍콩 집값이 대표적이다. 중국 지역의 부자들이 홍콩을 재산 도피처로 인식하면서 홍콩 아파트값은 2003년 이후 400% 넘게 뛰었다. 아파트값이 3.3㎡당 평균 1억원으로, 20평형대 아파트가 20억원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범죄인 인도 법안에 지지를 표명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에 대해 확고히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외부세력도 홍콩의 입법 활동에 간섭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했다.
autonomy@hankyung.com
홍콩 전역이 반(反)중국 정서로 들끓고 있다. 홍콩 지역에 있는 범죄 용의자를 중국 본토에 인도할 수 있게 하는 ‘범죄인 인도법안’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전날 이 법안을 반대하는 시위에 103만여 명이 참여했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그럼에도 홍콩 정부가 법안을 강행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사태는 악화일로다. 이번 사태는 12일 홍콩 시의회의 표결 결과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홍콩 행정부 “법안 철회 거부”
AFP통신 등에 따르면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범죄인 인도법안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며 강행 의지를 나타냈다.
지난 9일 홍콩 시내엔 주최 측 추산 103만 명이 모여 범죄인 인도법안 개정 중단과 람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홍콩 인구가 740만 명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홍콩 시민의 7명 중 한 명꼴로 시위에 참여한 셈이다. 시위대는 홍콩 빅토리아공원에서 출발해 코즈웨이베이, 완차이를 지나 홍콩 정부청사까지 행진했다.
홍콩 현지 매체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03년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때와 같은 저항의 분위기가 홍콩에 퍼졌다”며 “홍콩인들은 자유를 지키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고 전했다.
홍콩에선 2003년 7월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와 2014년 6월 일명 ‘우산혁명’ 시위가 있었다. 각각 최대 50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시위대가 우산으로 경찰의 최루액 분사를 막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우산 혁명’은 홍콩 행정장관의 완전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79일이나 이어졌다.
이번 법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9일 홍콩 시내의 대규모 집회 당시 뉴욕 토론토 등 세계 12개국 29개 주요 도시에서도 동시다발적인 집회가 벌어졌다. 시위대 “홍콩 독립성 위배”
범죄인 인도법안은 중국과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들을 넘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해 2월 대만에서 벌어진 홍콩인 살인사건이 계기가 됐다. 홍콩법은 영국 속지주의(영외 발생 범죄 불처벌)에 따라 타국에서 발생한 살인죄를 처벌할 수 없다. 홍콩 정부는 대만 문제를 다루면서 중국, 마카오 등에서도 용의자를 소환하도록 법안을 정비했다.
그러나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즉각 반대했다.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을 악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홍콩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홍콩은 1997년 중국 반환 이후 특별행정구로서 2047년까지 사법자율권을 보장받았다. 홍콩 법조계는 “홍콩 반환 20년이 지나도록 중국 본토와 범죄인 인도 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것은 단순한 행정 착오나 실수가 아니다”며 “그만큼 중국 본토의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이 깊다는 증거”라고 반발했다.
홍콩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간섭이 나날이 심해지는 것도 이번 시위가 격화한 요인으로 꼽힌다. 그동안 ‘홍콩의 중국화’를 강행한 중국 중앙정부에 대한 반감이 쌓였다는 얘기다. 올초 홍콩 시의회는 ‘국가법’ 제정을 추진했다. 홍콩 내 공식 행사에서 중국 국가가 울려퍼질 때 기립하지 않거나 야유를 보내면 처벌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反중국 정서’ 터졌다
주요 외신들도 “이번 시위는 범죄인 인도법안을 계기로 터졌지만 근본적으로는 반중국 정서가 터져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우산혁명 시위가 정부의 양보를 끌어내지 못한 이후 중국 공산당은 홍콩에 점차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고 전했다. 5년 전 우산 혁명 당시 시위를 이끌었던 지도부는 공공소란죄 등의 명목으로 징역형이 선고됐고,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홍콩민족당은 강제로 해산됐다.
홍콩 정부는 법안 적용 대상을 축소하는 등 법안 일부를 수정하며 ‘달래기’에 나섰지만 시민들의 반발을 잠재우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번 시위는 정치적 측면 외에 사회·경제적 요소도 크기 때문이다. 급등한 홍콩 집값이 대표적이다. 중국 지역의 부자들이 홍콩을 재산 도피처로 인식하면서 홍콩 아파트값은 2003년 이후 400% 넘게 뛰었다. 아파트값이 3.3㎡당 평균 1억원으로, 20평형대 아파트가 20억원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범죄인 인도 법안에 지지를 표명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에 대해 확고히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외부세력도 홍콩의 입법 활동에 간섭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했다.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