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금리 인하 가능성 시사한 이주열…
결국 금리 인하 가능성 시사한 이주열…"경제 상황 변화에 적절히 대응"(사진=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한국은행 제공)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결국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중 무역분쟁과 반도체 경기 급랭 여파에 국내 경기 부진이 지속되면서 이후 경기가 추가로 악화되면 금리 인하를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이 총재는 12일 한은 창립 69주년 기념사에서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최근 미중 무역분쟁, 반도체 경기 등 대외 요인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진 만큼 그 전개추이와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경제 상황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는 단기간 내 금리 인하를 고려하겠다는 입장은 아니지만 상황 변화에 따라 금리 인하를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가 그동안 꾸준히 "기준금리 인하로 대응할 상황은 아직 아니다"며 선을 그은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어서 이목을 끈다. 5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로부터 12일 만의 입장 변화인 셈이다.

이 총재의 발언으로 금융시장에서 커지고 있는 연내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한층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총재의 발언에 대해 "통화 완화적 기조 가능성을 좀 진전해 말한 것 아닌가 이해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이 총재는 안정적인 성장세가 이어지고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에 수렴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금융안정에 유의해 운용하겠다는 통화정책 기조는 재확인했다.

또한 대내외 여건 변화에 따른 시나리오별 정책운용 전략을 수립해 적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을 직원들에게 주문했다. 가계부채, 자본유출입 등 금융안정 리스크 요인도 함께 고려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가계부채에 대해 이 총재는 최근 "증가세가 다소 둔화됐지만 총량 수준이 매우 높고 위험요인이 남아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에 대한 경계감을 아직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분쟁은 한층 심화되고 있고, 반도체 경기 역시 회복세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그 여파로 1분기 국내총생산(GDP) 잠정치는 직전 분기 대비 0.4% 역(逆)성장하며 성장률이 10년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4월 경상수지는 7년 만에 적자로 전환했다.

이에 다음달 18일 열리는 한은의 7월 금통위와 수정 경제 전망에 금융시장의 이목이 쏠린다. 올해 2.5%로 제시한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 총재는 이날 한은 창립기념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두 가지 우리 경제의 큰 영향을 주는 대외 요인인 미중 무역분쟁과 반도체 경기가 우리 예상보다는 어려운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언급해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었다.

이 총재는 "미중 무역분쟁이 점점 우리 경제를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반도체 경기도 상반기가 다 지나갔는데, 당초 예상보다는 회복 시기가 지연될 수 있을 것 같다고 걱정한다"고 말했다.

또한 금융시장에서는 5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이 나온 상황에서 이 총재의 발언과 함께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채권시장에서는 이미 금리 인하 가능성을 반영한 상황이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줄곧 기준금리(연 1.75%)를 하회하고 있다. 이달 들어서는 만기 10년 이상 장기 국채 금리도 기준금리 밑으로 떨어졌다.

금융시장에서는 정책변화가 단행되는 시점은 3분기보다는 4분기에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치고 있다. 4분기 금통위는 10월17일과 11월29일이다.

한편, 이 총재는 정책당국에 "경제의 성장을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들이 상존하고 있는 만큼 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해 구조개혁에도 힘써야 할 것"이라고 이라고 제언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