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독일인 신사가 연단에 올랐다. 객석의 중국인들이 통역기 이어폰을 끼려는 순간 유창한 중국어가 터져나왔다. “전기차업체 바이튼의 다니엘 키르헤르트입니다.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돼 영광입니다.”

키르헤르트 바이튼 최고경영자(CEO·사진)는 13일까지 사흘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CES아시아 2019’에서 ‘자동차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했다. 전기차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바이튼은 럭셔리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에 도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유일한 업체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에서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M바이트’(사진)를 공개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M바이트는 전기차의 장점을 극대화해 넓게 설계한 실내와 독자적인 운용체계(OS), 앱(응용 프로그램) 생태계를 갖췄다. 차량 전면의 48인치 디스플레이 통해 각종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키르헤르트 CEO는 2002년 BMW의 중국 생산법인을 시작으로 15년간 중국 내 고급 자동차업체에서 일했다. 올해 한국 나이로 47세인 그는 44세였던 2016년 바이튼 창업에 나섰다. 당시 둥펑인피티니의 사장을 맡고 있었다. 일본 닛산의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 인피니티와 둥펑이 합작한 회사다. 그는 “업무 부담이 크지 않은 자동차업체를 나와 스타트업 창업에 나서는 것은 힘든 결정이었다”고 회고했다.
43세에 중국서 창업한 독일인 "15년 직장생활보다 3년 스타트업서 더 많이 배웠다"
키르헤르트 CEO를 움직인 것은 젊은 기술자들의 열정이었다. 그는 “젊은 기술자들이 함께 창업하자고 제안했다. 그들의 열정 때문에 힘든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창업은 쉽지 않았다. 투자자의 관심과 전기차에 대한 정부 지원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가운데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내야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그는 “스타트업에서 일한 기간은 이제 막 만 3년이 됐지만 이전 직장생활 15년간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바이튼의 난징 공장은 내달부터 본격적으로 M바이트 생산에 돌입한다. 지난해 CES 이후 예약 판매 물량은 10만대다. 50%는 중국, 나머지 50%는 미국과 유럽 등에서 팔렸다. 올해 말 중국에서 정식 출시한다. 내년엔 미국과 유럽에서 판매에 나선다. M바이트에 이은 세단 K바이트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키르헤르트 CEO는 1998년 난징대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며 중국과 인연을 맺었다. “어릴 때부터 중국에 관심이 많아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좋아하고 관심있는 일을 했더니 오늘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어 “스타트업 창업 성공률이 10% 미만이지만 젊은이들에게 한번 도전하라고 하고 싶다”며 “창업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것이 미래에 무엇을 하든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상하이=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