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行試 선호도 추락 현상의 씁쓸함
필자가 대학을 졸업한 1980년대에는 취업 시즌인 10월쯤 되면 학과 사무실에 기업이나 금융회사 지원서가 쌓였다. 학과 교직원은 졸업예정자들을 성적순으로 불러 지원서 중 한 장을 고르도록 했다. 이렇게 모든 졸업예정자들이 지원서 한 장씩 받으면 원점에서 다시 성적순으로 두 번째 지원서를 고르는 방식이었다.

당시 가장 선호도가 높았던 회사는 신종 금융회사였던 리스사였다. 리스사 연봉은 대기업 연봉의 두세 배가 족히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다음이 현재 몇 개 남지 않은 종합금융사, 그다음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속칭 단자사로 불린 투자금융회사 그리고 현재 자산운용사로 변신한 투자신탁회사, 장기신용은행, 증권사 등 여타 금융회사가 뒤를 이었다. 요즘 잘나가는 대기업들은 상기한 금융회사에 비해 연봉에서 낮다 보니 선호도에서 밀렸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1997년 외환위기 전후로 위에 적은 바로 그 순서대로 무너졌다. 규모가 작은 리스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 종금사와 단자사는 외환위기의 주범은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주가 부양책에 동원된 투신사는 모두 부실화됐고 장기산업자금 형성에 큰 기여를 한 장기신용은행 역시 부도가 난 후 국민은행에 인수됐다.

요즘도 필자는 수업 시간에 이 얘기를 하곤 한다. 1989년에 인기를 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란 제목의 영화에 빗대 “인생은 결국 성적순이었다. 다만 역순이었다”고 자조적인 농담을 한다. 농담조로 말하지만 필자의 대학 친구 중 가장 성적이 우수하고 성실했던 친구들이 당시 실직의 고통에 힘들어했고, 그중 일부는 연락마저 두절됐기 때문에 속으로는 아직도 피눈물이 난다.

그런데 필자가 전공하는 재무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위험-보상의 비례관계(risk-return trade-off)다. 쉽게 말해 주식은 채권보다 위험하기 때문에 기대수익률이 높아야 한다. 위험 프리미엄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같은 회사채라도 신용등급이 낮아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은 회사채는 가산금리가 높아야 한다. 이런 원리는 단순히 자본시장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위험성이 높은 직업은 보수도 높아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인적자본(human capital) 역시 자본의 일종이다. 사후적인 얘기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상기한 금융회사들이 높은 연봉을 지급한 이유는 그만큼 전문성이 요구되는 측면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직업의 위험성(job risk) 역시 높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서울대 경제학부는 경제관료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우리나라가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한 이래 가장 많은 경제부처 관료를 배출했고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자부한다. 2000년대 초 필자가 처음 경제학부에 부임했을 때도 많은 학생이 재경직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조선시대로 치면 대과(大科)에 해당하는 과거시험이다. 개인적으로는 입신양명의 꿈을 품고, 사회적으로는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다는 소명의식을 안고 많은 우수한 학생이 이에 도전했다.

그런데 지난 2년간 우리 학부에서 행시를 준비하는 학생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현재 가장 선호하는 진로는 로스쿨로 불리는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고, 그다음이 한국은행을 비롯한 금융공기업에 취업하는 것이다. 이렇게 행시의 위상이 추락한 데는 공무원 보수가 민간 부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데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적폐청산 과정에서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등의 명목으로 흔히 말하는 ‘늘공’마저 줄줄이 영어의 몸이 됐기 때문이다. 즉 위험은 높지만 보수는 낮은, 투자론 용어로 ‘샤프지수’가 매우 낮은 직업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반면 모든 금융공기업이 그렇진 않겠지만 일부는 업무 강도 및 직업 위험에 비춰 보수가 너무 높은 경향이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건강한 경제생태계는 위험에 비례해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행시에 대한 선호도 추락과 금융공기업에 대한 선호 현상이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