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침묵은 영혼의 언어…유럽 수도원의 영성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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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승효상 지음 / 돌베개
520쪽 / 2만8000원
승효상 지음 / 돌베개
520쪽 / 2만8000원

외진 산골에서 왜 이렇게 사는지 물었더니 수도 생활이 50년을 넘는 수도원장 신부가 말했다. “고독이라는 여건이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만날 수 있는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고독 속에서 행복하다”고 했다. 수도원은 이를 위해 건물 구조부터 ‘고독한 형태’로 만들었다. 성당과 회의실, 작업실 등 공용 공간 외에 수도자마다 독립된 은수처(隱修處)를 갖도록 해 놓았다.
![[책마을] 침묵은 영혼의 언어…유럽 수도원의 영성을 찾아서](https://img.hankyung.com/photo/201906/AA.19873537.1.jpg)
로마 근교 수비아코의 베네딕토수도원에서 출발한 여정은 프랑스 파리까지 2500㎞에 달했다. 미술가, 디자이너, 목사, 변호사 등 각계 인사 20여 명이 동행했고, 저자가 이전에 방한한 그리스, 아일랜드, 티베트 등을 포함해 30여 개 도시, 50여 곳의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정의 군데군데에서 팁처럼, 강의처럼 전해주는 수도회와 교회의 역사와 문화, 건축에 담긴 시대정신, 저자의 신앙고백 같은 생각들이 공감을 자아낸다. 본격적인 여정에 앞서 방문한 로마 근교 수비아코의 베네딕토 수도원은 아슬아슬한 산벼랑에 자리해 있다. 성 베네딕토는 왜 1500년 전 이 험하고 외진 곳을 수도처로 삼았을까. 저자는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일 거라고 말한다.
전 세계 모든 수도회가 따르는 베네딕토 수도 규칙서가 제시하는 삶의 세 가지 기준은 복음 삼덕(三德)으로 불리는 청빈과 정결(동정), 순종이다. 그중에서도 순종이 가장 지키기 어려울 것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순종은 완전히 자신을 버려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베네딕토 규칙서가 ‘기도하고 노동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의 소도시 루카에 있는 산 마르티노 성당 출입구에는 바닥에 짙은 색 돌로 미로를 만들어놨다. 성당에 들어가려면 동심원 모양의 미로를 무릎 꿇고 기어서 가야 한다. 여기서 저자는 티베트 라싸의 조캉사원에서 만난 오체투지의 풍경을 떠올린다. 옷은 남루하고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서 피어나는 광채…. 수도란 그야말로 길을 닦는 것이며, 염화시중의 미소는 온몸으로 길을 닦는 고통을 겪은 뒤에야 알게 되는 행복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수도원, 건축, 여행, 저자 자신 등 4개의 층위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흑백 사진과 어우러지면서 순례에 동참한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