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인공지능(AI)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돼버린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인공지능과 초연결사회의 확산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원천이 빅데이터이고 그 작동원리가 연산법, 즉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과 아라비아 숫자를 세상에 안겨준 인물은 놀랍게도 9세기 페르시아 수학자 알고라즈미다. 그의 이름이 학문 명칭이 됐다. 무함마드 이븐무사 알콰리즈미로도 알려진 이 수학자는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 호라즘 출신이다. 고리즘, 콰리즘, 호라즘은 표기법의 차이이지 모두 같은 명칭이다.

그는 아바스 제국의 수도 바그다드의 종합대학인 ‘바이툴 히크마(지혜의 집)’에서 수학하고 가르쳤다. 당시 바이툴 히크마는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같은 그리스 철학, 유클리드 기하학, 프톨레마이오스의 천체학, 갈렌의 의학 등 유럽에서 잊혀지고 홀대당하던 첨단 학문을 가르치던 최고의 학문전당이었다. 전 세계 석학이 몰려들었고 페르시아 문학과 인도의 수학이 덧붙여지면서 아랍의 학문 르네상스를 견인했다. 유럽보다 600년이나 앞서 문명의 개화기를 맞았다. 이 시기를 주도한 가장 중요한 학자가 알콰리즈미였다.

그의 첫 번째 저술이 830년에 나온 《복원과 대비의 계산》이었다. 삼각법은 물론 1차방정식과 2차방정식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정리한 책이다. 우리가 지금 ‘대수학(algebra)’이라고 부르는 학문을 선사했다. 그의 두 번째 저술은 《인도 숫자에 관한 연산법칙》이란 제목을 달았다. 여기서 알고리즘이란 단어가 처음 사용됐다. 알콰리즈미는 인도 수학뿐만 아니라 천문학, 지리학, 철학 분야에서도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학문적 결실은 이슬람 세계는 물론, 12세기 이후 서유럽에 전해짐으로써 유럽 근대 학문의 단단한 기초가 됐다. 오늘날 인도 수학이 유럽에서 아라비아 숫자로 알려지게 된 것도 알콰리즈미의 절대적인 영향력 덕분이었다.

나아가 알콰리즈미는 그리스 시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을 대폭 수정 보완해 2402개 도시의 좌표는 물론 각 지역 날씨에 따라 위도, 경도가 표시된 《지구의 표면》이란 탁월한 지리서를 저술했다. 오늘날 현대 학문을 주도하는 천문학, 화학, 물리학, 지리학 등의 학문 용어가 모두 아랍어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바이툴 히크마가 이끌어간 과학 진보의 결실이다. 그 중심에 알콰리즈미가 있었다.

9~10세기 아랍 르네상스를 가능케 한 시대적 배경에는 알마문이라는 뛰어난 리더가 있었다. 그가 바로 바이툴 히크마라는 최첨단 아카데미를 설립한 술탄이다. 최고의 대우와 학문 숭상 정책으로 전 세계 인재들을 바그다드로 불러 모은 주인공이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새로운 창조적 지식으로 저술된 책의 무게를 달아 금으로 맞교환했다고 한다. 인류 역사상 학자들이 이렇게 대접받고 존중받은 경우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 덕분에 이후 200여 년간 이슬람 세계에서는 약 300만 권 이상의 아랍어 저술이 필사됐고 이 필사본들이 아랍 전역에 산재해 있다. 놀랍게도 이런 필사본 속에는 고대 신라와 고려를 기록한 저술도 20권 이상 발견돼 우리 학계에 보고됐다.

알고리즘 본산으로서의 자긍심을 되찾고자 하는 아랍 세계의 AI 투자 정책도 눈여겨볼 만하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쿠웨이트, 이집트, 바레인, 오만 등 7개국을 중심으로 조사한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2030 전략보고서’에 의하면 중동의 AI 산업 투자 규모는 소매, 공공, 의료, 재정, 교육 부문을 중심으로 사우디의 162조원을 포함해 총 384조원에 이른다.

AI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평균 11%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UAE와 사우디의 GDP 대비 AI 산업 비중은 각각 13.6%와 12.4%에 이를 전망이다. 건설, 에너지, 플랜트에 집중됐던 전통적 대(對)중동 진출에서 과감히 탈피해 AI 산업에 대한 새로운 투자와 시장 전략이 절실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