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脫한국' 가속…해외직접투자 사상 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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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141억달러…45% 급증
국내 기업의 ‘탈(脫)한국’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각종 규제와 높은 인건비로 투자 매력이 떨어진 한국을 떠나 해외에 둥지를 트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올 1분기 국내 기업 등의 해외직접투자액이 141억1000만달러를 기록해 작년 1분기(97억4000만달러)보다 44.9% 늘었다고 14일 발표했다. 분기별로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81년 4분기 이후 38년 만의 최고치다. 반면 올 1분기 국내 총투자 금액은 131조2000억원으로 작년 1분기보다 8.5% 줄었다. 같은 기간 해외 기업 등이 국내에 투자한 외국인직접투자(26억2000만달러·도착 기준)도 15.9% 감소했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수많은 규제와 반(反)기업 정서, 경쟁국에 비해 높은 법인세율과 인건비, 작은 내수시장 등으로 인해 한국의 투자 매력이 떨어졌다는 의미”라며 “규제 완화와 법인세율 인하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지 않으면 해외로 떠나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규제·反기업 노조 못 견뎌"…기업들 쫓기듯 해외로
요즘 국내 주요 기업 투자 담당자들의 눈은 하나같이 해외로 쏠려 있다. 단순히 생산기지를 다변화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저렴한 인건비, 원스톱 행정처리는 물론 법인세 면제 등 각종 인센티브로 유혹하는 외국이 공장을 두기에 훨씬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갈수록 강화되는 보호무역주의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 배터리공장 건설에 나선 것이나 CJ제일제당이 미국 2위 냉동식품 업체인 슈완스를 인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기업들의 ‘탈(脫)한국’ 현상은 14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1분기 해외직접투자 동향’ 자료에 그대로 담겼다. 정부는 “작년 1분기 투자액(97억4000만달러)이 최근 9분기 평균(120억5000만달러)을 크게 밑돈 탓에 기저효과가 생겼다”고 설명하지만 기업인들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코리아 엑소더스’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통계적 착시’로 치부할 일이 아니란 얘기다. 국내 투자 줄고 해외는 늘고
올 1분기 해외직접투자(ODI)를 가장 많이 늘린 업종은 제조업이었다. 작년 1분기 24억1000만달러에서 57억9000만달러로 140.2% 확대됐다. 외국 기업 인수합병(M&A)과 해외 공장 설립을 늘린 결과다. CJ제일제당이 지난 2월 슈완스 인수대금(16억7800만달러) 중 잔금을 납입한 것과 LG디스플레이의 중국 광저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공장 증축 대금 등이 반영됐다. 미국(95.2%)과 중국(156.1%) 투자가 대폭 늘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여파로 기업마다 미국에 생산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M&A와 공장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이 해외 펀드와 해외 부동산 투자를 늘리면서 금융·보험업과 부동산업도 각각 48.2%와 36.4% 확대됐다. 미래에셋대우는 올초 프랑스 파리의 랜드마크인 ‘마중가 타워’를 1조원에 인수했고, 삼성증권은 프랑스 파리의 크리스털파크 오피스 단지를 9200억원에 품었다.
“탈한국 지속될 가능성 높다”
해외 투자 증가는 국내 투자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 전체 투자(총고정자본형성) 금액은 131조2000억원으로 작년 1분기보다 8.5% 줄었다. 특히 제조업이 주도하는 설비투자가 17.4%나 쪼그라들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2009년 1분기(-19.0%) 후 10년 만의 최대 감소폭이다. 해외 기업 등이 국내에 투자한 외국인직접투자(FDI·26억2000만달러·도착 기준)도 올 1분기 15.9% 감소했다.
최근 FDI와 ODI, 국내 투자 동향이 보내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한국의 투자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 부진은 필연적으로 경기둔화를 부른다. 기재부는 이날 발간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6월호’에서 “수출과 투자의 부진한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학계와 재계가 경고해온 ‘투자 부진→일자리 감소→소비 둔화→경기침체→투자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됐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기업의 탈한국 현상은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국내 기업 환경이 △과도한 규제 △반기업적인 노조 △포화된 국내 시장 △높은 운영비로 인해 경쟁력이 떨어져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이 해외로 떠난다는 건 자본뿐 아니라 일자리와 기술도 같이 나간다는 의미”라며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자리 대책은 친기업 정책을 통해 해외로 나가려는 한국 기업을 붙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헌/이태훈 기자 ohyeah@hankyung.com
기획재정부는 올 1분기 국내 기업 등의 해외직접투자액이 141억1000만달러를 기록해 작년 1분기(97억4000만달러)보다 44.9% 늘었다고 14일 발표했다. 분기별로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81년 4분기 이후 38년 만의 최고치다. 반면 올 1분기 국내 총투자 금액은 131조2000억원으로 작년 1분기보다 8.5% 줄었다. 같은 기간 해외 기업 등이 국내에 투자한 외국인직접투자(26억2000만달러·도착 기준)도 15.9% 감소했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수많은 규제와 반(反)기업 정서, 경쟁국에 비해 높은 법인세율과 인건비, 작은 내수시장 등으로 인해 한국의 투자 매력이 떨어졌다는 의미”라며 “규제 완화와 법인세율 인하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지 않으면 해외로 떠나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규제·反기업 노조 못 견뎌"…기업들 쫓기듯 해외로
요즘 국내 주요 기업 투자 담당자들의 눈은 하나같이 해외로 쏠려 있다. 단순히 생산기지를 다변화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저렴한 인건비, 원스톱 행정처리는 물론 법인세 면제 등 각종 인센티브로 유혹하는 외국이 공장을 두기에 훨씬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갈수록 강화되는 보호무역주의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 배터리공장 건설에 나선 것이나 CJ제일제당이 미국 2위 냉동식품 업체인 슈완스를 인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기업들의 ‘탈(脫)한국’ 현상은 14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1분기 해외직접투자 동향’ 자료에 그대로 담겼다. 정부는 “작년 1분기 투자액(97억4000만달러)이 최근 9분기 평균(120억5000만달러)을 크게 밑돈 탓에 기저효과가 생겼다”고 설명하지만 기업인들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코리아 엑소더스’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통계적 착시’로 치부할 일이 아니란 얘기다. 국내 투자 줄고 해외는 늘고
올 1분기 해외직접투자(ODI)를 가장 많이 늘린 업종은 제조업이었다. 작년 1분기 24억1000만달러에서 57억9000만달러로 140.2% 확대됐다. 외국 기업 인수합병(M&A)과 해외 공장 설립을 늘린 결과다. CJ제일제당이 지난 2월 슈완스 인수대금(16억7800만달러) 중 잔금을 납입한 것과 LG디스플레이의 중국 광저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공장 증축 대금 등이 반영됐다. 미국(95.2%)과 중국(156.1%) 투자가 대폭 늘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여파로 기업마다 미국에 생산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M&A와 공장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이 해외 펀드와 해외 부동산 투자를 늘리면서 금융·보험업과 부동산업도 각각 48.2%와 36.4% 확대됐다. 미래에셋대우는 올초 프랑스 파리의 랜드마크인 ‘마중가 타워’를 1조원에 인수했고, 삼성증권은 프랑스 파리의 크리스털파크 오피스 단지를 9200억원에 품었다.
“탈한국 지속될 가능성 높다”
해외 투자 증가는 국내 투자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 전체 투자(총고정자본형성) 금액은 131조2000억원으로 작년 1분기보다 8.5% 줄었다. 특히 제조업이 주도하는 설비투자가 17.4%나 쪼그라들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2009년 1분기(-19.0%) 후 10년 만의 최대 감소폭이다. 해외 기업 등이 국내에 투자한 외국인직접투자(FDI·26억2000만달러·도착 기준)도 올 1분기 15.9% 감소했다.
최근 FDI와 ODI, 국내 투자 동향이 보내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한국의 투자매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 부진은 필연적으로 경기둔화를 부른다. 기재부는 이날 발간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6월호’에서 “수출과 투자의 부진한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학계와 재계가 경고해온 ‘투자 부진→일자리 감소→소비 둔화→경기침체→투자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됐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기업의 탈한국 현상은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국내 기업 환경이 △과도한 규제 △반기업적인 노조 △포화된 국내 시장 △높은 운영비로 인해 경쟁력이 떨어져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이 해외로 떠난다는 건 자본뿐 아니라 일자리와 기술도 같이 나간다는 의미”라며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자리 대책은 친기업 정책을 통해 해외로 나가려는 한국 기업을 붙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헌/이태훈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