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한국 최초 신학생 최양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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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최양업 신부는 한국 최초의 신학생이자 김대건 신부에 이어 한국 천주교회의 두 번째 한국인 사제가 된 인물이다. 그는 1821년 3월 충남 청양군 화성면의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기해박해(1839) 때 순교한 최경환 성인이며, 어머니는 역시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이성례 씨다.
최 신부는 1836년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우리 역사상 최초의 신학생으로 선발됐다. 최방제, 김대건 신부 등과 함께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신학교에서 신학 수업을 받았다.
1845년 먼저 조선으로 돌아온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는 병오박해(1846) 당시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 ‘피의 순교자’로 불린다. 1849년 중국 상하이에서 두 번째 한국인 사제가 된 최 신부는 국내로 돌아온 뒤 ‘땀의 순교자’란 별칭을 얻었다. 약 12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국의 신자들을 찾아다니며 땀으로 신앙을 퍼뜨렸다 해서 붙여졌다. 그는 매년 7000리(약 2750㎞) 이상을 이동하며 선교활동을 했다.
이 밖에 서양 신부들에게 직접 라틴어 서한문을 남기고 교리서를 저술하는 등 국내 천주교 사료 수집에 크게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 신부는 40세가 되던 1861년 6월 15일, 장티푸스와 과로로 선종했다. 교황청은 2016년 최 신부의 ‘영웅적 성덕(Heroic Virtue)’을 인정해 가경자(可敬者)로 선포했다. 가경자란 복자(福者·Blessed) 후보자에게 주는 잠정 호칭이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
최 신부는 1836년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우리 역사상 최초의 신학생으로 선발됐다. 최방제, 김대건 신부 등과 함께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신학교에서 신학 수업을 받았다.
1845년 먼저 조선으로 돌아온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는 병오박해(1846) 당시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 ‘피의 순교자’로 불린다. 1849년 중국 상하이에서 두 번째 한국인 사제가 된 최 신부는 국내로 돌아온 뒤 ‘땀의 순교자’란 별칭을 얻었다. 약 12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국의 신자들을 찾아다니며 땀으로 신앙을 퍼뜨렸다 해서 붙여졌다. 그는 매년 7000리(약 2750㎞) 이상을 이동하며 선교활동을 했다.
이 밖에 서양 신부들에게 직접 라틴어 서한문을 남기고 교리서를 저술하는 등 국내 천주교 사료 수집에 크게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 신부는 40세가 되던 1861년 6월 15일, 장티푸스와 과로로 선종했다. 교황청은 2016년 최 신부의 ‘영웅적 성덕(Heroic Virtue)’을 인정해 가경자(可敬者)로 선포했다. 가경자란 복자(福者·Blessed) 후보자에게 주는 잠정 호칭이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