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다짐 넘쳐난 이희호 여사 장례…"못 이룬 꿈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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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교회서 장례예배…예배당 가득 채운 추모객들 정성껏 기도·찬송
동교동 사저·김대중도서관 노제…출근길 시민들 발길 멈추고 배웅
현충원 추모식에 2천여명 참석…DJ 묘역에 합장 "이제 우리는 한 시대와 이별하고 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 조사), "여사님의 못다 이룬 뜻을 이제 저희 몫으로 받들겠습니다.
" (신낙균 전 문화관광부 장관 조사)
14일 오전 7시 30분 신촌 창천교회.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부인 고 이희호 여사의 장례예배는 추모객들의 눈물과 다짐으로 침통하면서도 뜨거운 분위기 속에 거행됐다.
앞서 이 여사의 운구 행렬이 빈소가 있던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을 마치고 인근 창천교회에 도착하자 앞마당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던 옛 신우들이 고개를 숙였다.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 씨의 아들인 종대 씨가 이 여사의 영정 사진을 들었고, 그 뒤로 홍업 씨와 3남 홍걸 씨 등 유족이 따랐다.
감리교 신자였던 이 여사는 동교동으로 이사한 1960년대 초부터 창천교회에 다니며 장로를 지냈고, 생전에 "창천교회에서 장례식을 열어달라"고 주변에 당부했다고 한다. 예배당은 새벽부터 나온 추모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장례위원석 맨 앞줄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민주평화당 권노갑 고문,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 등 공동 장례위원장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평화당 박지원 의원 등이 자리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평화당 정동영 대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민주당 이석현 의원 등도 일찌감치 자리했다.
이들은 기도와 찬송이 이어지는 동안 눈을 감거나 아련한 표정으로 고인을 기억했다.
이희호 여사 발인…'영원한 동반자' DJ 곁으로/ 연합뉴스 (Yonhapnews)
평소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이해찬 대표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쳤다.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었던 평화당 최경환 의원도 목놓아 울었다.
추도사와 조사를 낭독하는 이들은 목이 메어 이따금 말을 잇지 못했다.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는 장례예배 추도사에서 "DJ의 '행동하는 양심'이 울림이 컸던 것은 여사님의 흔들림 없는 양심과 민주주의를 향한 불굴의 의지가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낙연 총리는 조사에서 "정권교체 절반은 여사님 몫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을 마주하신 여사님의 생애를 기억하며, 우리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배는 참석자들이 차례로 이 여사 영전에 헌화하는 것을 끝으로 70여분 만에 마무리됐다.
김성재 장례집행위원장은 인사말에서 "특별히 애도의 마음을 보내고 장례절차를 잘 마칠 수 있도록 해준 문재인 대통령께 감사드린다"며 "조의문과 조화를 보내준 북조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이후 운구 행렬은 이 여사가 1963년 김 전 대통령과 신혼살림을 차린 후 별세할 때까지 살았던 동교동 사저로 향해 노제를 지냈다.
이 여사 운구차를 사저 앞 골목에 세운 유족들은 영정 사진을 모시고 고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사저와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실내를 천천히 걸으며 말없이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특히 사저 침실과 도서관 집무실에서는 미리 놓여 있던 김 전 대통령의 영정 옆에 이 여사의 영정이 내려졌다. 영정 사진을 든 이 여사의 손자 종대 씨는 '김대중', '이희호'라고 나란히 걸린 사저 문패 앞에서 짧게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출근길 시민과 이웃이 발길을 멈추고 이 여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으며, 노제를 마친 유족들이 동교동을 떠날 때는 최현석 마포경찰서장과 사저를 경호하던 시설경호중대가 일제히 거수경례했다.
장례예식은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정부 주관 '사회장 추모식'으로 이어졌다.
시민 2천여명이 현충관 안팎에서 이 여사를 추모했다.
자리가 모자라 좁은 공간에서 선 채로 예식을 지켜보는 이들이 많았다.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았던 여야 정치인 다수가 추모식에 함께 했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는 장례위원회 고문과 위원으로 '애도'라고 적힌 리본을 가슴에 달고 앞자리에 앉았다.
5일장을 치르는 동안 빈소를 수시로 지켰던 문희상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여사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남아있는 우리들의 몫이 이제 시작됐다"며 "뼈를 깎는 각오로 그 꿈을 완성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여야 5당 대표들은 조사를 통해 이 여사의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입을 모아 눈길을 끌었다.
이해찬 대표는 이 여사의 과거 모습을 떠올리며 영면을 기원했고, 황교안 대표는 "여사님의 뜻을 깊이 새겨 국민 행복과 나라의 평화를 위해 마음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추모식 말미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보낸 조의문이 한 차례 더 낭독됐고, 이 여사의 생전 모습이 담긴 추모 영상이 상영됐다.
현충원 내 김 전 대통령 묘역에서 이어진 이 여사의 안장식은 국방부 주관으로 유족들과 일부 장례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됐다.
이해동 목사 집전으로 한 차례 더 예배를 마친 후 국군의장대가 김 전 대통령 봉분 한쪽을 미리 헐어내 마련한 공간으로 이 여사의 관을 조심스럽게 내리자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다. 유족과 장례위원회 고문 등 20여명이 애통한 표정으로 한 명씩 관 위에 흙을 뿌리는 '허토'를 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남인 건호 씨가 맨 마지막으로 흙을 얹었다.
의장대가 세 차례에 걸쳐 총 19번의 조총을 울렸다.
흐린 날씨 속에 묘역으로 미처 들어가지 못한 추모객 150여명이 먼발치에서 안장식을 지켜봤다.
추모식이 있었던 현충관 앞에서도 시민 100여명이 자리를 뜨지 않고 남아 야외 스크린으로 중계되는 묘역 상황을 끝까지 지켜봤다. /연합뉴스
동교동 사저·김대중도서관 노제…출근길 시민들 발길 멈추고 배웅
현충원 추모식에 2천여명 참석…DJ 묘역에 합장 "이제 우리는 한 시대와 이별하고 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 조사), "여사님의 못다 이룬 뜻을 이제 저희 몫으로 받들겠습니다.
" (신낙균 전 문화관광부 장관 조사)
14일 오전 7시 30분 신촌 창천교회.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부인 고 이희호 여사의 장례예배는 추모객들의 눈물과 다짐으로 침통하면서도 뜨거운 분위기 속에 거행됐다.
앞서 이 여사의 운구 행렬이 빈소가 있던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을 마치고 인근 창천교회에 도착하자 앞마당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던 옛 신우들이 고개를 숙였다.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 씨의 아들인 종대 씨가 이 여사의 영정 사진을 들었고, 그 뒤로 홍업 씨와 3남 홍걸 씨 등 유족이 따랐다.
감리교 신자였던 이 여사는 동교동으로 이사한 1960년대 초부터 창천교회에 다니며 장로를 지냈고, 생전에 "창천교회에서 장례식을 열어달라"고 주변에 당부했다고 한다. 예배당은 새벽부터 나온 추모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장례위원석 맨 앞줄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민주평화당 권노갑 고문,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 등 공동 장례위원장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평화당 박지원 의원 등이 자리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평화당 정동영 대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민주당 이석현 의원 등도 일찌감치 자리했다.
이들은 기도와 찬송이 이어지는 동안 눈을 감거나 아련한 표정으로 고인을 기억했다.
평소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이해찬 대표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쳤다.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었던 평화당 최경환 의원도 목놓아 울었다.
추도사와 조사를 낭독하는 이들은 목이 메어 이따금 말을 잇지 못했다.
장상 전 국무총리서리는 장례예배 추도사에서 "DJ의 '행동하는 양심'이 울림이 컸던 것은 여사님의 흔들림 없는 양심과 민주주의를 향한 불굴의 의지가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낙연 총리는 조사에서 "정권교체 절반은 여사님 몫이었다고 생각한다"며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을 마주하신 여사님의 생애를 기억하며, 우리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배는 참석자들이 차례로 이 여사 영전에 헌화하는 것을 끝으로 70여분 만에 마무리됐다.
김성재 장례집행위원장은 인사말에서 "특별히 애도의 마음을 보내고 장례절차를 잘 마칠 수 있도록 해준 문재인 대통령께 감사드린다"며 "조의문과 조화를 보내준 북조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이후 운구 행렬은 이 여사가 1963년 김 전 대통령과 신혼살림을 차린 후 별세할 때까지 살았던 동교동 사저로 향해 노제를 지냈다.
이 여사 운구차를 사저 앞 골목에 세운 유족들은 영정 사진을 모시고 고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사저와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실내를 천천히 걸으며 말없이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특히 사저 침실과 도서관 집무실에서는 미리 놓여 있던 김 전 대통령의 영정 옆에 이 여사의 영정이 내려졌다. 영정 사진을 든 이 여사의 손자 종대 씨는 '김대중', '이희호'라고 나란히 걸린 사저 문패 앞에서 짧게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출근길 시민과 이웃이 발길을 멈추고 이 여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으며, 노제를 마친 유족들이 동교동을 떠날 때는 최현석 마포경찰서장과 사저를 경호하던 시설경호중대가 일제히 거수경례했다.
장례예식은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정부 주관 '사회장 추모식'으로 이어졌다.
시민 2천여명이 현충관 안팎에서 이 여사를 추모했다.
자리가 모자라 좁은 공간에서 선 채로 예식을 지켜보는 이들이 많았다.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았던 여야 정치인 다수가 추모식에 함께 했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는 장례위원회 고문과 위원으로 '애도'라고 적힌 리본을 가슴에 달고 앞자리에 앉았다.
5일장을 치르는 동안 빈소를 수시로 지켰던 문희상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여사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남아있는 우리들의 몫이 이제 시작됐다"며 "뼈를 깎는 각오로 그 꿈을 완성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여야 5당 대표들은 조사를 통해 이 여사의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입을 모아 눈길을 끌었다.
이해찬 대표는 이 여사의 과거 모습을 떠올리며 영면을 기원했고, 황교안 대표는 "여사님의 뜻을 깊이 새겨 국민 행복과 나라의 평화를 위해 마음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추모식 말미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보낸 조의문이 한 차례 더 낭독됐고, 이 여사의 생전 모습이 담긴 추모 영상이 상영됐다.
현충원 내 김 전 대통령 묘역에서 이어진 이 여사의 안장식은 국방부 주관으로 유족들과 일부 장례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됐다.
이해동 목사 집전으로 한 차례 더 예배를 마친 후 국군의장대가 김 전 대통령 봉분 한쪽을 미리 헐어내 마련한 공간으로 이 여사의 관을 조심스럽게 내리자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다. 유족과 장례위원회 고문 등 20여명이 애통한 표정으로 한 명씩 관 위에 흙을 뿌리는 '허토'를 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남인 건호 씨가 맨 마지막으로 흙을 얹었다.
의장대가 세 차례에 걸쳐 총 19번의 조총을 울렸다.
흐린 날씨 속에 묘역으로 미처 들어가지 못한 추모객 150여명이 먼발치에서 안장식을 지켜봤다.
추모식이 있었던 현충관 앞에서도 시민 100여명이 자리를 뜨지 않고 남아 야외 스크린으로 중계되는 묘역 상황을 끝까지 지켜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