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위기의식' 주문하는 이재용 "삼성도 10년 뒤 몰라…새 창업 각오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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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모바일부문 사장단 회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그동안의 성과를 수성하는 차원을 넘어 새롭게 창업한다는 각오로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격화하는 미·중 무역분쟁과 끝 모를 반도체값 추락, 검찰 수사 등 안팎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영 환경 속에서 위기의식을 가져달라는 주문을 임직원에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본지 6월 6일자 A1, 5면 참조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지난 14일 경기 수원 본사에서 IT모바일(IM)부문 사장단 회의를 열어 “지금은 어느 기업도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며 이같이 당부했다고 16일 밝혔다. 그가 임직원에게 ‘새로운 창업정신’을 강조한 것은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대신해 그룹 경영을 맡은 뒤 이번이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최근 들어 부쩍 위기감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토요일인 이달 1일에는 김기남 부회장 등을 포함한 반도체부품(DS)부문 사장단을 소집해 “단기적인 기회와 성과에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13일 DS부문 경영진과 또다시 간담회를 열어 133조원 규모의 시스템 반도체 투자 집행 계획을 직접 챙겼다.
그는 IM부문 사장단 회의에서도 “어떤 경영환경 변화에도 흔들리지 말고 미래를 위한 투자는 차질 없이 집행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삼성전자는 전했다. 이 부회장이 2주 새 삼성전자의 양대 축인 반도체와 스마트폰 사업부문 사장단 회의를 연달아 세 차례 연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 부회장은 17일 삼성전기 수원사업장을 찾아 전장용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사업 등 신산업 투자 방안을 논의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단 및 다른 계열사와의 간담회도 차례로 열 예정”이라고 했다. 삼성 컨트롤타워 '마비'…이재용, 매주 수뇌부 만나 사업 '진두지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선포하기 전 해외 사업장을 68일간 돌며 현장을 점검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삼성전자 고위관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최근 경영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이달 들어 2주일 새 삼성의 주력 사업부인 DS(반도체부품), IM(IT모바일)부문 사장단과 세 차례 회의를 했다. 첫 일정이었던 DS부문 사장단 간담회는 토요일인 지난 1일 열렸다. 형식적인 회의를 꺼리고 부사장급 이하 임직원과 토론을 즐기는 이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에 비춰볼 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의 현 상황은 위기”
삼성 안팎에선 ‘삼성의 현 상황을 위기 국면으로 판단한 이 부회장이 주요 경영진과 릴레이 회동에 나섰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반도체(DS)와 스마트폰(IM) 사업부는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 244조원의 77%(187조원), 영업이익의 93%(55조원)를 벌어준 ‘캐시 카우’(현금 창출원)다. 최근 들어 미·중 무역분쟁 후폭풍과 메모리 반도체 불황 등 외부 악재 탓에 리스크(위험)가 커지고 있는 사업들이다. 이 부회장은 17일 삼성전기 수원 사업장을 찾는 등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단 및 계열사 경영진과의 간담회도 순차적으로 할 계획이다.
첨단 정보기술(IT)산업을 둘러싸고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이 ‘위기 경영’을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미·중 갈등으로 세계 경기가 가라앉고 반도체가격 회복이 늦어지는 등 삼성전자를 둘러싼 경영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중국 정부를 굴복시키기 위해 화웨이를 집중 공격하듯이 삼성도 주요 강대국으로부터 견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삼성 경영진의 우려다. 이 부회장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신보호무역주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경쟁사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가 시스템 반도체, 6세대(6G) 통신, 블록체인 등 신산업 분야를 집중적으로 챙기는 이유다.
이 부회장의 발언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그는 지난 1일 DS부문 사장단 회의 때 “단기적인 기회와 성과에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14일 IM부문 사장단 회의에선 “어느 기업도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 새롭게 창업한다는 각오로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의 플랫폼 기업들도 유럽연합(EU)과 중국 등으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다”며 “삼성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비된 컨트롤타워
삼성 핵심 경영진을 겨냥한 검찰과 경찰의 각종 수사도 이 부회장의 최근 경영 행보에 영향을 줬다는 후문이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을 2017년 2월 전격 해체했다. 이후 중장기 전략 수립과 사업부 간 이해관계 조정의 필요성을 느낀 삼성은 삼성전자에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 조직을 신설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발표한 180조원 규모의 중장기 투자고용 전략과 올 4월 내놓은 133조원 시스템 반도체 투자 계획을 세운 곳도 사업지원TF다.
하지만 이 조직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및 증거인멸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사업지원TF 소속 임직원 중 상당수가 PC와 휴대폰을 압수당해 업무에 차질을 빚는다는 얘기도 들린다”며 “검찰이 언제 부를지 모르는데 일이 손에 잡히겠느냐”고 했다. 이 부회장의 내부 회의 일정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던 삼성이 잇따라 사장단 간담회 일정을 알리고 나선 것은 임직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본지 6월 6일자 A1, 5면 참조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지난 14일 경기 수원 본사에서 IT모바일(IM)부문 사장단 회의를 열어 “지금은 어느 기업도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며 이같이 당부했다고 16일 밝혔다. 그가 임직원에게 ‘새로운 창업정신’을 강조한 것은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대신해 그룹 경영을 맡은 뒤 이번이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최근 들어 부쩍 위기감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토요일인 이달 1일에는 김기남 부회장 등을 포함한 반도체부품(DS)부문 사장단을 소집해 “단기적인 기회와 성과에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13일 DS부문 경영진과 또다시 간담회를 열어 133조원 규모의 시스템 반도체 투자 집행 계획을 직접 챙겼다.
그는 IM부문 사장단 회의에서도 “어떤 경영환경 변화에도 흔들리지 말고 미래를 위한 투자는 차질 없이 집행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삼성전자는 전했다. 이 부회장이 2주 새 삼성전자의 양대 축인 반도체와 스마트폰 사업부문 사장단 회의를 연달아 세 차례 연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 부회장은 17일 삼성전기 수원사업장을 찾아 전장용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사업 등 신산업 투자 방안을 논의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단 및 다른 계열사와의 간담회도 차례로 열 예정”이라고 했다. 삼성 컨트롤타워 '마비'…이재용, 매주 수뇌부 만나 사업 '진두지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선포하기 전 해외 사업장을 68일간 돌며 현장을 점검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삼성전자 고위관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최근 경영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이달 들어 2주일 새 삼성의 주력 사업부인 DS(반도체부품), IM(IT모바일)부문 사장단과 세 차례 회의를 했다. 첫 일정이었던 DS부문 사장단 간담회는 토요일인 지난 1일 열렸다. 형식적인 회의를 꺼리고 부사장급 이하 임직원과 토론을 즐기는 이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에 비춰볼 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의 현 상황은 위기”
삼성 안팎에선 ‘삼성의 현 상황을 위기 국면으로 판단한 이 부회장이 주요 경영진과 릴레이 회동에 나섰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반도체(DS)와 스마트폰(IM) 사업부는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 244조원의 77%(187조원), 영업이익의 93%(55조원)를 벌어준 ‘캐시 카우’(현금 창출원)다. 최근 들어 미·중 무역분쟁 후폭풍과 메모리 반도체 불황 등 외부 악재 탓에 리스크(위험)가 커지고 있는 사업들이다. 이 부회장은 17일 삼성전기 수원 사업장을 찾는 등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단 및 계열사 경영진과의 간담회도 순차적으로 할 계획이다.
첨단 정보기술(IT)산업을 둘러싸고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이 ‘위기 경영’을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미·중 갈등으로 세계 경기가 가라앉고 반도체가격 회복이 늦어지는 등 삼성전자를 둘러싼 경영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중국 정부를 굴복시키기 위해 화웨이를 집중 공격하듯이 삼성도 주요 강대국으로부터 견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삼성 경영진의 우려다. 이 부회장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신보호무역주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경쟁사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가 시스템 반도체, 6세대(6G) 통신, 블록체인 등 신산업 분야를 집중적으로 챙기는 이유다.
이 부회장의 발언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그는 지난 1일 DS부문 사장단 회의 때 “단기적인 기회와 성과에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14일 IM부문 사장단 회의에선 “어느 기업도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 새롭게 창업한다는 각오로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의 플랫폼 기업들도 유럽연합(EU)과 중국 등으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다”며 “삼성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비된 컨트롤타워
삼성 핵심 경영진을 겨냥한 검찰과 경찰의 각종 수사도 이 부회장의 최근 경영 행보에 영향을 줬다는 후문이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을 2017년 2월 전격 해체했다. 이후 중장기 전략 수립과 사업부 간 이해관계 조정의 필요성을 느낀 삼성은 삼성전자에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 조직을 신설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발표한 180조원 규모의 중장기 투자고용 전략과 올 4월 내놓은 133조원 시스템 반도체 투자 계획을 세운 곳도 사업지원TF다.
하지만 이 조직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및 증거인멸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사업지원TF 소속 임직원 중 상당수가 PC와 휴대폰을 압수당해 업무에 차질을 빚는다는 얘기도 들린다”며 “검찰이 언제 부를지 모르는데 일이 손에 잡히겠느냐”고 했다. 이 부회장의 내부 회의 일정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던 삼성이 잇따라 사장단 간담회 일정을 알리고 나선 것은 임직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