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호프집에서 판매하는 생맥주 가격이 다음달부터 약 20% 오를 전망이다. 호프집에서 유행하는 ‘맥주 4병+1병’과 같은 행사도 사라진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열던 와인·양주 시음회도 앞으로는 보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수십 년 이어져온 주류업계 ‘영업의 룰’이 1개월 만에 싹 바뀐다. 국세청이 지난달 30일 행정예고한 ‘주류 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 위임 고시’ 개정안 때문이다. 국세청은 “건전한 술 유통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주류업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정상적 영업활동의 하나이던 판매 장려금을 사실상 금지하고, 시장경제의 근본인 가격까지 정부가 통제하려 든다는 게 이유다. 이 개정안은 7월 1일부터 시행되고, 어기면 판매 장려금을 주고받은 양측이 모두 처벌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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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도·소매업계는 “업계의 의견 수렴도 없이 밀실에서 주류 제조·수입사들과 협의한 개정안으로 결국 중소 상인과 소비자만 피해를 볼 것”이라며 반발했다. 한국소상공인연합회 소속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는 오는 19일 부산지방국세청 앞 시위를 시작으로 ‘생존권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자영업자 목 조르는 졸속 고시다”

주류업계에는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의 ‘판매 장려금’이 있었다. 술을 많이 파는 도매상이나 소매상에 판매량에 비례해 제공하는 ‘덤’이나 ‘에누리’가 대표적이다. 도매상이 주류회사에 양주를 6병 주문하면 1~2병씩이 더 붙어 왔다. 맥주도 10박스를 구매하면 1박스 정도 더 받았다. 이를 환산하면 도매상에는 보통 10~12%, 소매상에는 20~30%가량의 할인율이 적용된 셈이다.

이 때문에 양주값은 10여 년간 소비자 판매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맥주나 소주 출고가가 올라도 소비자물가에 바로 반영되지 않은 건 이런 판매 장려금 효과였다.

국세청은 이번 개정안을 통해 술 회사가 도매상에 제공할 수 있는 금품 한도를 1% 이내로, 소매상에는 3% 이내로 제한했다. 이는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예컨대 월 30억원어치 양주를 취급하는 도매상은 그동안 매달 3억여원을 할인받았다. 앞으로는 3000만원까지만 할인받을 수 있다. 이익이 줄면 소매점에 납품하는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소매점은 도매상으로부터 1000원에 받아오던 술을 1500원에 받게 된다. 또 메뉴판, 양주용 얼음통, 유리잔, 홍보용 간판 등 단가가 5000원이 넘는 지원 물품에 대한 주류업체 지원도 끊긴다. 결국 동네 호프집이나 식당은 소비자 판매가격을 20~30% 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밖에 시음을 위해 마트나 백화점에 영업 직원을 파견 보내는 것도 ‘용역 지원’으로 해석돼 불가능해진다.
호프집 생맥주값 20% 오르고, 마트 와인시음 사라진다
술값 오르고, 주류회사 기득권만 커질 수도

도소매업계가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번 개정안이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점이다. 지난해 3월 관련법 개정이 처음 논의되기 시작했다. 전국주류도매업중앙회가 도매상 간 차별이 존재한다며 국세청에 건의했고, 지난해 5월 국회에서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이로부터 1년이 지난 올 3월 국세청이 일부 제조업체를 불러 간담회를 연 뒤 5월 말 전격적으로 고시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제약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 때 1년의 유예기간을 준 것과 달리 1개월여 만에 시행키로 하면서 업계는 대혼란에 빠졌다. 김춘길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장은 “제조사와 도매상 간 부정부패를 잡으려다가 경제의 실핏줄 같은 외식업자와 자영업자가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됐다”며 “임차료, 임금 등 고정비 증가로 힘들어하는 300만 명 자영업자가 생존권을 위해 항의 집회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 통제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국세청은 한 가지 제품은 같은 가격에 납품하도록 했다. 맥주 1000병을 사는 곳과 1병을 사는 곳의 가격이 같아야 한다는 얘기다. ‘규모의 경제’를 부정하고, ‘영업활동 범위’를 제한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위스키나 와인은 정부의 가격 통제가 통상 마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국세청은 리베이트로 나가는 수천억원의 돈이 결국 소비자 복지와 신제품 연구개발(R&D)에 쓰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주류회사가 외국계 자본인 데다 해외에서 생산하는 술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기득권을 가진 주류회사 이익만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주류 도매업계 관계자는 “주류회사를 통하지 않고 병행수입 회사를 차리는 등 음성적인 주류 거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