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분양가 규제 여파로 올해 상반기 아파트 분양물량이 뚝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신규 분양이 급감하는 추세다. 2~3년 뒤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 삼성동 ‘상아 2차 아파트'가 정부의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후분양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철거 중인 상아 2차 아파트.  /한경DB
서울 삼성동 ‘상아 2차 아파트'가 정부의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후분양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철거 중인 상아 2차 아파트. /한경DB
전국 공급량 작년보다 14% 감소

18일 한국경제신문이 부동산인포에 의뢰해 전국 아파트 분양물량을 조사한 결과 올해 상반기 전국의 분양물량은 10만7877가구로 집계됐다. 작년 상반기(12만5838가구) 대비 14.2% 감소한 수치다.

분양가 규제 '불똥'…서울 분양 7년 만에 최저
수도권의 감소가 두드러졌다. 올해 상반기 서울 분양물량은 1만784가구로 지난해 동기 대비 10.5% 줄어들었다. 2013년 이후 최저치다. 인천·경기를 합친 올해 수도권 분양 물량은 4만7400가구로 지난해(5만6387가구)보다 15.9% 감소했다. 공급물량이 많았던 2015년과 비교하면 30% 이상 줄어든 수치다.

아파트 분양 공급이 쪼그라든 직접적인 이유는 정부의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한 강도 높은 분양가 옥죄기 때문이다. 정부 눈치를 보는 건설사들은 좀처럼 청약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조은상 리얼투데이 본부장은 “더 큰 문제는 올초 분양물량조차 대부분 정부의 분양가 규제와 청약제도 개편 등에 따라 지난해 하반기에 계획된 물량이 넘어왔다는 것”이라며 “정부의 분양가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어 앞으로도 분양 일정이 줄줄이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6일 HUG가 서울 등 고분양가 관리지역 내 아파트의 분양보증기준 강화를 발표하면서 6월 분양을 앞두고 있던 대어급 단지들이 일정을 줄줄이 미뤘다. 재건축·재개발 단지를 중심으로 분양가가 낮아질 것을 우려해 아예 후분양을 검토하는 단지도 나왔다. 후분양 방식으로 공급하면 HUG의 분양보증을 받을 필요가 없어 분양가 규제를 받지 않는다.

6월 서울 동대문구에서 분양할 예정이던 ‘청량리 롯데캐슬 SKY-L65’는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6월 주요 분양단지 중 하나였던 ‘래미안 라클래시’(삼성동 상아2차 재건축)는 후분양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경기 과천의 공공택지개발지구인 과천지식정보타운과 북위례 지역 민영아파트 분양도 다시 늦춰졌다. 이미 1년 이상 분양이 미뤄졌던 단지들이다.

“2~3년 뒤 수급불균형 불러올 수도”

일정이 하반기로 밀린 단지들이 연내 분양을 진행할지는 미지수다. 서초 무지개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서초 그랑자이’와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인 강동구 ‘둔촌주공’은 후분양을 포함한 여러 대응 방안을 놓고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둔촌주공은 총 1만2032가구 규모로 일반분양 물량만 5000가구에 달한다. 이 단지가 만약 연내 청약 신청을 받지 않으면 올해 서울 분양물량은 급감한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분양가 통제에 ‘로또 청약’만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분양시장에서는 당첨만 되면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로또 아파트가 양산되면서 실수요자 외에 투기 목적의 현금 부자들까지 청약에 몰려들고 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분양가를 인위적으로 누르면서 정부의 규제가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는 아파트를 양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현재와 같은 시스템에선 투기 과열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진작 분양에 들어갔어야 할 새 아파트들이 시장에 나오지 못하면서 수급불균형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분양가 인하 압박으로 분양이 미뤄지고 재건축과 같은 정비사업이 위축되면서 공급부족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며 “집값을 누를수록 오히려 가격을 올리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