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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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7000억원 규모로 편성된 올해 추가경정예산(추경)의 60%가량이 현 정부 추경 집행 때마다 나온 재탕·삼탕 사업 비용으로 채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국회에 추경안 처리를 요구하면서 “경기 부양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추경 편성 과정에선 ‘경기 대응’과는 무관한 사업을 습관적으로 끼워 넣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재탕·삼탕 사업에 4조3000억원 편성

18일 자유한국당 등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4월 국회에 제출한 6조6837억원 규모 284개 사업 중 약 25%인 70개가 현 정부의 세 차례(올해 포함) 추경 집행 때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이 사업들에 들어가는 비용은 전체 추경의 63.9%에 해당하는 4조2726억원이다. 2017년 이후 3년 연속 추경에 포함된 사업은 24개(사업비 2조5838억원), 2년 연속은 16개(2763억원)다. 2017년에 이어 올해 추경에 편성된 사업은 30개(1조4125억원)다.

보건복지부의 ‘의료급여 경상 보조’ 사업은 2013년 이후 2014년을 제외하고 올해까지 총 여섯 차례나 추경안에 포함됐다. 저소득층과 이재민 등의 의료비를 지원해 주는 사업으로, 매년 본예산에도 편성된다. 그럼에도 추경을 짤 때마다 ‘단골 메뉴’처럼 등장한 것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매번 본예산을 짜면서 정확한 비용 추계를 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사업비를 습관적으로 편성한 것인지 정부가 명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비 지원 사업이 다른 사업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며 본예산이 실제 소요액보다 적게 잡히는 경우가 많다”며 “산불, 지진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비용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3년 연속 추경안에 편성된 사업에는 ‘신성장 기반 자금’(3000억원) ‘소상공인 지원’(2445억원) ‘중소기업 모태조합 출자’(2000억원·이상 중소벤처기업부 소관), ‘고용 창출 장려금’(2883억원) ‘실업자 등 능력 개발 지원’(1551억원·이상 고용노동부 소관), ‘철도 안전 및 시설 개량’(2350억원) ‘다가구 매입 임대’(1592억원·이상 국토교통부 소관) 등이 포함됐다. 고용·산업 위기 지역 실직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희망근로 지원’ 사업(1011억원)도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추경 사업으로 선정됐다.

정부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정책 사업을 시행하다 보면 당초 추계보다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며 “그 부족분을 메우려다 보니 추경이 연속적으로 편성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 하강 국면에서 편성된 추경안이라면 정부가 경기 부양 효과가 뚜렷한 사업을 발굴해 비용을 편성해야 한다”며 “매년 반복되는 사업들을 시행하는 것으론 경기 대응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추경안 심사는 ‘첩첩산중’

더불어민주당은 20일 추경 관련 국회 시정연설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이날 밝혔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55일이 지난 만큼 더 이상 심사를 늦출 여유가 없다”며 “이번주 내로 시정연설을 마무리하고 심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 실정 청문회’ 개최를 국회 정상화 조건으로 내건 한국당은 이날도 추경 심사에 협조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폭거’로 국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뒤 이번에는 ‘재정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밀어붙이겠다고 한다”며 “이게 군소리 말고 통과시키라는 추경”이라고 비판했다. 정용기 한국당 정책위 의장도 “이번 추경은 빚내서 하는 ‘총선용 추경’”이라며 “정부 재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속이는 국민 기만”이라고 주장했다.

하헌형/김소현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