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측이 피해자들의 상처 치유와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지혜를 모아나가기를 희망합니다.”

20일 기자회견에서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덤덤히 말했다. 전날 우리 정부가 발표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한 제안을 일본 측이 거부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외교적인 협의는 계속해나갈 것”이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한·일 양국 기업의 자발적인 출연금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한다는 이번 제안은 많은 궁금증을 낳고 있다. 일본 측에서 이미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발표를 강행한 점에서 특히 그렇다.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이 지난 주말 일본을 찾아 의견을 전달했지만 일본은 곧바로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오스가 다케시 일본 외무성 보도관도 지난 19일 “한국 측이 사전에 방안을 제안해왔고 이미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정부의 제안이 과거 청와대가 일축했던 내용과 다르지 않다는 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올 1월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발상 자체가 비상식적”이라고 했다. 피해자들이 보상을 넘어 역사적 책임을 묻고 싶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랬던 정부가 이번 제안에 앞서 피해자들과 협의하지 않았다는 것도 의문이 꼬리를 잇는다. 피해자단체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대리인단과 지원단’은 정부 발표가 나오자마자 우려를 나타냈다.

외교부 안팎에서는 정부의 제안을 두고 버려질 것을 알면서 던진 카드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이 외교적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에 대응하기 위한 명분 쌓기라는 것이다. 일본 측이 요구한 중재위원회 설치 시한이 다가오고, 오는 28일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 성사가 난항을 겪으면서 던진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중대발표’라고 포장한 건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보다 외교적 ‘쇼’로 보인다”는 말까지 나온다. 외교부의 언론 플레이가 관계 개선은커녕 한·일 관계 경색을 장기화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