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위기의식조차 없는 위기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0%로 낮췄다. 조금만 어긋나면 1%대 성장에 직면할 것이란 우울한 예상이다. 지난 2년간 온 나라는 과거에만 매달려 치고받고 하느라 4차 산업혁명 등 미래를 고민하지 못했다. 위기는 당연한 결과다.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주 52시간 근로제 강행은 전체 노동자의 10%도 안 되는 양대 노조의 기득권을 지키는 대신, 영세 자영업자를 나락으로 떨어뜨렸고 청년 취업률을 악화시켰다. 경제정책 대실패다. 외교는 “북한이 먼저다”로 미국과 멀어졌고, 강제 징용공 재판으로 일본과는 어긋났으며, 중국에 짝사랑을 고백했지만 “줄 똑바로 서라”고 되레 겁박당했다. 외교 실종이다. 북한 목선이 동해 북방한계선(NLL) 남쪽으로 130㎞를 내려와 삼척항에 밧줄로 스스로 정박하기까지 해군과 해경은 깜깜하게 몰랐다. 안보 붕괴다.

탈(脫)원전 2년 만에 원전 60년의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호소에도 정부는 오불관언 ‘직진’이다. 강(江)의 재자연화를 외치는 환경단체의 주장만 듣고 4대 강의 보(洑)를 전면 해체하겠다고 한다. 이들은 보와 댐이 700여 개나 있는 다뉴브강을 향해 뭐라고 비판할 수 있을까. 인지 부조화다.

청와대 일부에서는 현실 인식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을 최소화해야 한다”든가 “경기가 ‘하방(下方)’하고 있다”는 발언들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보다 좋지 않다는 불황 상황이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부분적인 ‘정책 수정’이 아니라 대대적인 ‘정책 전환’이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최근 저서 《대변동》에서 위기에 처했던 7개 국가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는지 대응 방법을 비교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가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교훈을 제시한다. 첫 번째로 위기임을 인정하고 책임을 수용하며,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는 자기연민을 중단하고 남을 탓하지 말 것, 다른 국가로부터 지원받을 것을 충고한다.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마셜플랜’ 지원은 유럽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서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일본과 한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원조도 마찬가지였다는 설명이다. 우방의 도움을 받지 못한 대표적 사례로는 소련과 맞선 ‘겨울 전쟁’ 기간의 핀란드를 꼽는다. 당시 핀란드의 우방임을 자처했던 영국, 프랑스는 지원군을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당시 우방의 도움을 받지 못한 고립무원의 잔혹한 경험은 이후 핀란드 외교정책의 기반이 됐다. 우방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핀란드가 택할 수 있는 길은 국가의 독립성을 약간 포기하며 소련과 실용적 관계를 유지하는 ‘핀란드화(Finlandization)’였다.

지금 우리는 미·중 패권경쟁으로 촉발된 무역전쟁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중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미국과 일본이라는 전통 우방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중국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는 ‘한국화’를 걱정해야 하는 위기적 상황이다.

앞으로 누가 내 편이 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6·25전쟁 69주년을 맞는 지금 돌이켜보면 유엔군으로 참전했거나 의료지원을 한 미국을 비롯한 22개국은 우리를 지켜준 우방이었다. 반대로 중국은 통일을 막고 분단을 영속시킨 국가였다. 물론 중국은 이후 우리의 최대 경제 교류국이 됐다. 그럼에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서 보듯 중국은 언제나 중화적 패권을 감추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는 지도자의 몫이지만, 지도자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혜택과 고통은 모두 국민의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도자의 명민함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에 기업은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연일 ‘위기의식’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 모두 위기의식을 갖고 하나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6·25전쟁 때처럼 모두가 뭉쳐야만 경제, 외교, 국방에서의 복합 위기와 북핵이라는 국난을 극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