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나까지 서민, 내 위로는 부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뉴스가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 남녀 3873명을 대면조사한 결과 76%가 ‘세금을 더 걷어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 조사결과는 복지를 더 늘리고 증세를 해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돼 널리 보도됐다.

하지만 보사연 조사는 딱 거기까지였다.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는가’는 묻지 않았다. 그런 질문이 추가됐다면 결과는 딴판이었을 수 있다. 다양한 뉴스댓글 가운데 눈길을 확 끄는 게 있다. “나까지는 서민, 내 위로는 다 부자.” 4년 전 연말정산 파동 때도 그랬다.

실제로 보사연의 조사패널 중 ‘객관적 중상층(중위소득 대비 150%)’이 19.5%였지만 스스로 그런 수준으로 여긴 ‘주관적 중상층’은 5.0%에 불과했다. ‘국민의식의 서민화’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월 174만원)이 올해 1인가구 중위소득(170만원)을 추월해 ‘최저임금을 받는 중간층’이란 형용모순까지 나왔다. 상하, 고저, 좌우를 막론하고 모두가 빠듯하고 힘들고 어렵다고 한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의 딜레마가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복지 확대를 전가의 보도로 쓰려는 참인데 세수 호황은 끝나가고, 재정이 구멍 나고, 증세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다. 올 1~4월 세수가 전년 동기보다 5000억원 줄었고, 관리재정수지는 38조8000억원 적자다. “국가채무비율 40%가 마지노선이란 근거가 뭐냐”는 대통령 발언과 정부·여당이 솔솔 흘리는 증세론의 배경이다.

여당은 법인세 최고세율 25% 적용 확대(과표 3000억원→500억원 이상),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 확대(연 2000만원→1000만원) 등 ‘2차 부자 증세’의 군불을 때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부동산 기준시가와 시가반영률을 함께 올리고(국토교통부), 1주택 양도세 과세안 설문조사 해프닝(기획재정부)도 벌였다. 정부·여당이 읽은 민심은 ‘복지는 좋지만 증세는 싫다’는 것이다.

더 노골적인 것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국토보유세’다. 보유세를 두 배로 높이면 국민 1인당 연 30만원씩 기본소득을 줄 수 있다는 취지다. 그는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니 조세저항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세부담은 5%의 토지 부유층에 전가될 것이다.

아무리 세금을 올려도 대기업과 부자들은 도망갈 수 없으니 ‘인질극’이 가능하다는 심사인 듯하다. 하지만 사람과 돈의 이동이 자유로운 글로벌 시대란 점을 간과하고 있다. 1분기 해외직접투자 사상 최대(141억달러), 중소 제조업 매출 급감(-7.3%)에는 사업을 접고 기계를 뜯어 나가는 참담한 현실이 담겨 있다.

게다가 골드바, 달러화, 해외 부동산에 몰리는 뭉칫돈이 심상치 않다.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절하) 논란, 7년 만의 경상수지 적자, 경제위기 ‘10년 주기설’ 등이 오버랩돼 사잴 수 있는 것이면 다 산다는 판국이다. 웬만한 중상층은 해외에 다 연고가 있다. 나가려면 얼마든지 나간다. 자식들을 미국에 유학시킨 정치인들이 모를 리 만무하다.

복지 확대와 증세론을 꺼낼 때마다 반(反)부자·반기업 정서에 편승해 ‘혜택은 모두, 부담은 부자’가 당연시되고 있다. 정부 스스로 로빈후드를 자처한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 재원 마련은 솔직하게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보편적 증세를 추진하는 게 정도(正道)다.

누구나 아는 현실도 외국인이 지적하면 더 신랄하게 들린다. 귀화 중국인 첸란은 한국인과 한국 사회에 대해 “‘흥부와 놀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겉으로는 부를 경멸하면서도 부를 열망하는 이중적인 면이 있다”며 ‘체제는 자본주의, 의식은 사회주의’라고 평했다.(《살벌한 한국, 엉뚱한 한국인》)

민주주의가 지속가능하려면 권리와 의무, 자유와 책임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복지는 다수의 권리이고, 세금은 소수의 의무인 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인가. ‘한국 정치는 4류’라는 말이 나온 게 24년 전이다. 전혀 달라지지 않은 4류 정치가 ‘내로남불’을 시대정신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