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단길 뜨나 싶더니 이젠 을삼…'단명 상권'에 자영업자들 한숨
상권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입소문으로 ‘반짝 인기’를 누리다가 임차료 급등과 소비자 취향 변화로 급격히 쇠락하는 상가가 많아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한 곳에서 장사하기 더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2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이태원 일대 상가 공실률은 24.3%로 서울 평균 공실률(7.5%)보다 세 배가량 높았다. 이날 찾은 이태원 경리단길에는 건물마다 ‘임대’ 푯말이 즐비했다. 이에 비해 을지로3가, 샤로수길(서울대 입구) 일대 공실률은 0~4%로 빈 점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처럼 희비가 엇갈리는 상권의 유행 주기는 2~3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경리단길의 언론 노출 빈도는 2013년부터 늘기 시작해 2015년(445건)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2016년(298건)부터 확 줄었다. 2016~2017년에 떠올랐던 망원동 상권(망리단길)도 이듬해부터 급격히 쇠락했다. 박태원 광운대 도시계획부동산과 교수는 “접근성 등 입지 요건보다 SNS를 통한 입소문이 골목 상권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면서 상권 헤게모니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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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임대료 주고 왔는데…" 인스타 맛집도 망하는 '~리단길'

지난 20일 오후 7시30분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 사람들이 몰릴 저녁 시간이지만 인스타그램에 4000여 번 태그된 한 식당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가게 직원은 “임차료가 오르면서 주변 가게들이 빠지기 시작했다”며 “게다가 상권이 망했다고 소문까지 나 손님이 더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이 식당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올 하반기 계약이 끝나면 문을 닫을 예정이다.

인근 가게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아예 불이 꺼져 있거나 ‘임대’를 써 붙인 빈 가게도 수두룩했다. 일대 부동산이 내건 매물장에는 ‘무권리 상가 임대’ 문구들이 눈에 띄었다.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2017년 임대료가 고점일 때도 장사하겠다는 가게가 많았는데 요즘엔 상권이 죽어 매물이 나와도 들어오는 가게가 없다”며 “건물주가 월세를 3분의 1 수준까지 깎아줘도 계약이 어렵고 권리금도 안 받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같은 시간 서울 을지로3가와 성수동 일대는 평일 저녁인데도 인파가 몰렸다. 이들 지역은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신흥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카페, 음식점 등 다양한 점포가 잇따라 문을 열고 있다. SNS 속 핫플레이스 탐방이 젊은 소비자들의 트렌드가 되면서 상권이 커지는 속도도 빨라졌다. ‘반짝’ 인기몰이를 하는 동안 임대료가 급등하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가게들이 떠나가면서 상권 수명도 짧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망원동 건물 1층, 통째로 수개월째 ‘임대 중’

요즘 경리단길과 가로수길을 찾는 사람들은 현저히 줄었다. 경리단길에 가게를 열었던 연예인 홍석천 씨 등이 골목상권을 부활시키기 위해 최근 ‘경리단길 살리기 프로젝트’에 나섰을 정도다. 2~3년 전부터 인기를 끈 망원동 망리단길도 빈 건물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한 건물에는 1층 점포 세 곳이 모두 비어 있었다. 건물 맞은편 가게의 직원 신모씨는 “가게가 나간 지 3~4개월 지났다”며 “이 거리가 처음 뜰 때 있던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거나 주인들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망리단길에서 21년째 꽃집을 운영하는 최모씨(66)는 “외부에서 건물을 사서 들어온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크게 올리자 젊은 사장들이 을지로나 성수동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최근 뜨고 지는 골목상권 분위기는 공실률을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중대형 매장 기준으로 ‘샤로수길’이 있는 서울대입구역 상권 공실률은 2017년 4분기부터 작년 4분기까지 0%를 유지했다. 반면 경리단길 부근 공실률은 이 기간 11.8%에서 21.6%로 두 배가량 뛰어올랐다.

가로수길 5~6년, 경리단길은 2~3년

경리단길 뜨나 싶더니 이젠 을삼…'단명 상권'에 자영업자들 한숨
전문가들은 골목상권의 ‘흥망성쇠’ 주기가 빨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젠트리피케이션(임차료 급등으로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의 시초로 불리는 가로수길은 상권이 본격적으로 성장해 정점을 찍을 때까지 5~6년이 걸렸다. 신한카드에 따르면 신사동 가로수길 음식점의 카드 이용 건수(1~5월) 증가율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20~40% 수준이었으나 2015년부터 6%로 둔화됐다. 이후 2016년 이용 건수는 전년 대비 9% 감소했다. 경리단길은 이 같은 주기가 2~3년에 불과했다. 경리단길에서 신한카드 요식업 가맹점들의 카드 이용 건수는 2011년에 전년보다 42% 증가했다. 2013년과 2014년엔 각각 119%, 157% 급증했고 2016년 23%로 증가폭이 줄어들더니 올 들어 마이너스 상태다.

상인들은 이처럼 골목상권 수명이 짧아진 원인으로 SNS와 임차료를 꼽는다. 망리단길에서 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60대 김상교 씨는 “거리가 뜨면서 젊은 사장들이 이색 매장을 열고 SNS를 통해 방문한 젊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듬해 손님이 확 줄더라”며 “반면 임차료는 1년 만에 두 배로 뛰니 청년 사장들도 버틸 수 없어 짐을 싼다”고 설명했다. 한때 연남동 맛집으로 꼽혔던 ‘프랑스포차’도 2017년 9월 성수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가게 사장은 “건물주가 월세를 1년에 20%씩 올리는 걸 감당하기 어려워 나왔다”며 “이사 당시 성수동이 ‘핫플레이스’가 될 거라고 들었는데 최근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상권도 상품처럼 소비 속도 빨라져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서울시 상업 젠트리피케이션 실태와 정책적 쟁점’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소비자들은 상권을 ‘제품’처럼 빠르게 소비한 후 다른 상권을 찾아 떠난다.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SNS가 발달할수록 대중에게 정보가 퍼지는 속도와 범위가 확대되고,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소비자들이 SNS 맛집을 찾아가며 상권은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활성화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SNS를 보고 온 일회성 손님은 일반적으로 단골 손님보다 이용 금액이 적고, 유동인구가 늘어날수록 단골 손님은 줄어든다. 결국 장기적으로 가게 매출이 감소하는 구조로 악순환한다고 진단했다.

2015년부터 SNS로 입소문을 타며 떠오른 서울 봉천동 샤로수길도 올 들어 임대료가 폭등했지만 벌써 ‘끝물’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샤로수길 초입에 있는 상가들의 3.3㎡(평)당 임대료는 2015년 10만원 선에서 올 들어 25만원가량으로 두 배 이상 올랐다. 샤로수길의 한 음식점 요리사 김모씨(26)는 “임차료는 올랐지만 고객 수는 지난해보다 20%가량 줄었다”며 “거리가 인기를 끌자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나타나 소규모 음식점 위주였던 상권 특색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일대 한 공인중개사는 “상가 매물이 나오자마자 ‘손바뀜’이 이뤄지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한 달째 매물이 쌓여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뜨는 골목 상권’만 믿고 구체적인 계획 없이 무작정 가게를 내는 자영업자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망리단길의 한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소위 ‘~리단길’ ‘~로수길’로 뜬 거리에는 상권만 믿고 파스타집,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난다”며 “그렇게 거리 특색이 없어지면 유동인구가 줄고, 제일 먼저 나가떨어지면서 상권이 급속히 죽는다”고 전했다.

김순신/노유정/이주현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