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스스로를 외통수로 모는 외교
미·중 무역분쟁이 날로 격화되면서 한국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 때처럼 고래 싸움에 끼인 새우 꼴이 됐다. 이번에 쟁점이 된 것은 미국이 벌이는 화웨이 제재에 동참하느냐 여부다.

미국은 안보 위협을 이유로 화웨이 장비 불매에 한국도 참여하기를 원한다는 뜻을 여러 경로로 전달해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가을 5세대(5G) 장비 선정 때 제기된 화웨이의 보안 취약성에 대해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이렇게 틈을 보이자 중국은 경제적 보복을 위협하며 한국을 더욱 심하게 겁박해왔다.

급기야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7일 “화웨이 장비가 쓰이는 5G는 군사안보 통신망과 확실히 분리돼 있다”며 “한·미 군사 안보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했다. 5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5G 보안 측면에서 신뢰할 만한 공급자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며 거듭 화웨이 배제를 요구한 데 대해 공식적으로 거부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사드 때 경험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한국 기업의 중국 수출길을 유지하는 실리적인 선택이라고 하겠지만 장기적으로도 과연 현명한 결정일까.

중국의 경제 보복을 둘러싼 우려는 중국의 수요와 중국 내 경제 기회가 지금과 같은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로 중국 경제가 급속히 침체된다면 중국이 내줄 경제적 이익도 보잘것없어질 수 있고, 따라서 중국이 경제보복을 하려야 할 수단이 별반 남지 않게 될지 모른다. 한국 정부의 선택은 이 점을 간과했다. 이처럼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우려해 중국 편에 섰다는 점에서 한·미 동맹의 약화 내지 와해라는 엄청난 비용을 치를 공산이 커졌다.

지금 전개되는 양상을 볼 때 미·중 무역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대중(對中) 무역적자의 근본 원인인 정부보조금, 지식재산권, 법·제도 측면에서 완전한 양보를 얻어내려 하고 있다. 무역전쟁 초기 미국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듯한 자세를 보였던 중국도 지난달 초 미국이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10%에서 25%로 올리겠다고 발표한 이후 “(미국이) 대화를 원하면 대화하고 싸우려고 하면 싸운다”는 식으로 강경해지고 있다.

중국 관변 언론에 실린 사설과 칼럼을 보면 미국이 단순한 무역전쟁이 아니라 중국의 굴기를 막기 위한 패권전쟁을 벌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결연히 맞서야 한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아직은 군사력이 미치지 못하는 만큼 직접적인 무력충돌을 제외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어떤 어려움이 있든 미국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느긋하다. 그의 책 《협상의 기술》에서 트럼프는 ‘부정적 사고’, 즉 최악의 상황에 대한 고려를 강조한다. 중국이 미국에 가할 수 있는 피해는 사실 크지 않다. 중국의 관변 언론을 보면 중국이 미국에 대해 사용을 고려하는 무기는 희토류 수출 중단, 미국 재무부 채권 매각 그리고 중국 진출 미국 기업에 대한 압박 등 세 가지다. 하지만 이 모두 미국에 심대한 타격을 주기에는 역부족이라 중국 정부도 고려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반면 미국은 국제금융만 동원해도 중국 경제를 뒤흔들 수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중국을 대놓고 압박한다.

이렇게 트럼프가 공공연히 압박하는 상황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쉽게 물러설 수도 없다. 특히 성장률 둔화로 실적을 통한 체제 정당화가 어려워진 마당에 스스로 부추긴 애국주의 물결을 거스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역전쟁이 장기화되면 중국 경제가 더욱 침체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중국이 선택한 것은 제3국과의 동조 및 연대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와의 관계도 다지고 미국의 눈엣가시인 북한과의 협력도 재확인했다. 이 때문에 북핵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워졌고 한·미 동맹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서 떨어질 떡고물마저 줄어들게 생겼다. 그렇다면 어떤 외교전략을 펼치는 게 옳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