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후원
회계학자 10명 중 9명
"대형 회계스캔들 또 터진다"
회계학자 10명 중 9명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같은 대형 회계 스캔들이 언제든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21~22일 한국회계학회 소속 회계학자 11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국제회계기준(IFRS)하에서 제2의 삼바 사태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나’란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이 109명(94%)에 달했다. ‘가능성이 없다’는 답변은 7명(6%)에 불과했다.
하나의 회계 처리 기준에 대해 여러 가지 판단이 가능한데도 ‘옳다, 그르다’로 나뉘는 이분법적 감독 틀이 유지된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처럼 사후에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분석이다. 회계학계 "'제2 삼바' 막으려면 기업의 회계판단 재량 인정해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부정 혐의를 둘러싸고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회계학자 대다수는 ‘제2의 삼성바이오’ 같은 대형 회계 스캔들이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올해 초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아시아나항공과 같은 ‘비적정 감사의견 쇼크’가 재연될 것이란 우려도 쏟아졌다. 금융감독당국이 지금처럼 기업들과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반복적인 회계대란이 불가피하다고 회계학자들은 진단했다.
“금융당국, 기업과 적극 소통해야”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21~22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2019 한국회계학회-아시아회계학회연합회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한국회계학회 소속 회계학자 1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 가운데 109명(94%)은 ‘국제회계기준(IFRS)하에서 제2의 삼성바이오 사태가 언제든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지난해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고의적 분식회계 판정을 받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최근 증거인멸 혐의로 관계자들이 소환되는 등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위법한 회계처리로 단정지을 수 없다’며 제재 효력을 중단시키는 등 회계처리기준의 위법성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있는 상황이다. IFRS하에선 하나의 회계처리 기준에 대해 다양한 판단이 가능한데도 이분법적 감독 틀이 유지된다면 비슷한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분석이다.
제2의 삼성바이오 사태를 피하기 위해선 ‘기업의 회계판단 재량권을 인정하는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40.5%로 가장 많았다. ‘기업 재무보고에 대한 공시 강화’(18%), ‘부정회계 제재 강화’(16.2%), ‘회계처리기준에 대한 질의회신 활성화’(13.5%)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비적정 감사의견 쇼크 반복될 것”
대기업 가운데 ‘제2의 아시아나항공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도 111명(95.7%)이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4월 감사의견 한정을 받고 상장폐지 위기에 몰려 주식시장에 충격을 줬다. 신(新)외부감사법(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도입 이후 기업과 감사인(회계법인)의 유착관계가 끊어지고 부실감사 제재가 대폭 강해지면서 장기간 감사의견 적정을 받았던 기업 중에서 비적정(의견 거절·부적정·한정) 감사의견을 받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다.
설문에 참여한 한 교수는 “감사인이 교체되고 감사시간이 충분히 확보되면 그동안 숨겨져 있던 기업 회계의 민낯이 드러날 것”이라며 “아시아나항공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1월 신외감법 시행에 따라 도입된 제도 가운데 자본시장과 기업 경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제도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라는 응답이 절반 이상(58.4%)을 차지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6년간 자율 선임하면 이후 3년간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강제 지정하는 제도다. 제도가 처음 시행되는 내년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KB금융지주 등 220개 기업의 감사인이 교체된다.
“회계쇼크 대비책 마련 필요”
신외감법으로 인해 기업 재무보고 투명성이 높아지고(39.8%), 기업-감사인 간 ‘갑을’ 관계가 청산(25.7%)되는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반면 회계기준 판단 이견에 따른 분쟁 급증(39.8%), 감사비용 상승(38.9%), 재무제표 정정 증가(8%) 등의 부정적 측면이 뒤따를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회계학자들은 신외감법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선 금융감독당국이 기업과 소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신외감법 이후 감독당국이 가장 우선시해야 할 감독 방향’을 묻는 질문에 ‘기업과의 소통·이해 노력’(23.2%)을 꼽은 답변이 가장 많았다. 또 회계감리에서 심사로의 전환이 잘 안착되도록 노력(20.5%)하고 부작용을 완화할 자본시장 안정장치를 마련해야 한다(15.2%)는 답변도 나왔다. 분식회계와 부실감사에 대해선 일벌백계가 필요하다(19.6%)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한 회계학자는 “내년부터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동시다발적으로 회계 규제가 강화되면 예상치 못한 쇼크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며 “과도기적 진통을 최소화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회계학자는 “재무제표는 기업의 가장 기본적인 정보이자 자본시장의 인프라”라며 “기업과 투자자들이 IFRS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분쟁을 줄일 수 있는 예방적 감독으로 사회적 비용을 감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수정/이우상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