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2015년 8월 작고한 천경자 화백은 여인의 한(恨)과 환상, 꿈과 고독을 화려한 원색으로 그려 국내 화단에서 여성 화가로는 드물게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리는 천 화백은 1970년대 들어 회고적 성격이 짙은 작품들을 제작하며 내면의 세계를 시각화하는 데 깊이 빠져들었다. 여성이란 숙명에 맞서기보다는 고독을 감내하며 세계 곳곳에서 주워 담은 다채로운 스토리텔링을 관조적 화풍으로 승화했다.

‘탱고가 흐르는 황혼’은 여인의 고독과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을 담아낸 1970년작이다. 담배를 입에 문 여성의 옆모습을 두 송이 장미와 함께 드라마틱하게 잡아냈다. 보라색 옷깃 사이에 간직한 장미는 여인의 입술과 동색을 이루며 손끝에서 맴돈다. 바닥에 기어다니듯 스멀거리는 담배 연기와 똬리를 틀어 단정하게 말아 올린 헤어 스타일은 영락없이 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1940~1950년 화사(花蛇)를 즐겨 그렸던 천 화백이 뱀을 여인의 머리와 담배 연기로 대체한 게 이채롭다. 이 그림은 2006년 3월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회고전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에 출품돼 시선을 끌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