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兆 'UAE원전 정비' 결국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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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지어주고 '하청 신세'로
장기정비서비스계약 맺었지만
단독수주 실패…기간도 5년
한국 脫원전 정책이 '결정타'
장기정비서비스계약 맺었지만
단독수주 실패…기간도 5년
한국 脫원전 정책이 '결정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지역에 한국형 원전 4기를 짓고 있는 ‘팀코리아’가 장기정비계약(LTMA)을 단독 수주하는 데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탈(脫)원전’을 선언한 뒤 국내 원전 부품 생태계가 급속히 붕괴하고 있는 데 따른 부작용이 현실화했다는 게 원자력계의 진단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3일(현지시간) UAE 아부다비에서 현지 원전 운영업체인 나와에너지와 정비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팀코리아에는 한수원 외에 한전KPS와 두산중공업이 참여하고 있다. 바라카 원전 정비계약은 한국형 APR1400 원전 4기(총 5600㎿)를 유지·보수 및 정비하는 프로젝트다. 이번 계약은 애초 예상됐던 LTMA 대신 장기정비서비스계약(LTMSA)으로 대체됐다. 팀코리아가 일괄 정비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일종의 하도급(용역)을 수주하게 됐다는 의미다. 10~15년으로 예상됐던 계약기간도 5년으로 단축됐다. 이에 따라 2조~3조원으로 전망됐던 계약액은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나와에너지는 한국 외에도 미국 영국 등 복수의 정비 사업자를 조만간 선정할 계획이다. 나와 측은 “우리가 바라카 원전의 정비작업을 주도하며 팀코리아는 개별 업무지시서에 따르게 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APR1400 운영 경험이 있는 만큼 우리가 UAE 정비사업에서 계속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원자력계는 탈원전 정책의 여파가 나타난 결과라며 아쉬워했다.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한국이 UAE와 원전 동반자 관계였는데 이제는 용역업체로 격하됐다”며 “한국에 단독 계약을 주지 않은 것은 탈원전에 대비한 위험관리 성격”이라고 평가했다.
물거품 된 UAE원전 단독정비…수천억짜리 '하도급 수주'로 전락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운영업체인 나와에너지가 한국수력원자력 등 한국 기업(팀코리아)에 단독·일괄 정비 계약권을 주지 않은 건 국내 원자력계에선 예상했던 결과다. 정부가 2017년부터 ‘탈(脫)원전’ 정책을 본격화한 뒤 원전부품 생태계에 대한 국내외 우려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UAE 측에선 ‘위험관리’ 차원에서 자체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복수의 정비 사업자를 두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작년 말부터 흘러나온 ‘UAE 이상신호’
UAE 바라카 원전은 한수원 등이 자체 기술로 만든 100% 한국형 모델(APR1400)이다. 고유 기술인 만큼 올초까지만 해도 한국이 장기정비계약(LTMA)을 단독 수주할 것으로 기대됐다.
‘이상 분위기’가 처음 감지된 건 작년 말이다. 장기서비스계약(LTSA)이 한국의 경쟁사인 프랑스전력공사(EDF)로 넘어갔다. 올해 초에는 무함마드 알하마디 UAE 원자력공사(ENEC) 사장이 서한을 보내 “LTMA 협상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한수원이 일방적으로 바라카의 핵심 인력을 철수시켰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심각하고 위험한 결정”이라고 경고했다. UAE가 ‘일방적인 인력 철수’라고 주장한 내용은 한수원 내부의 정기인사 이동이었다. 그만큼 UAE와 한국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란 평가다.
이번 정비계약 기간이 당초 예상(10~15년)보다 훨씬 짧은 5년에 불과한 데다 UAE 측이 복수의 사업자를 용역(하도급) 방식으로 선정하겠다고 밝힌 건 대단히 아쉬운 대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규직이 계약직으로 격하된 꼴이라는 얘기다. 나와에너지는 이번에 한국과 체결한 장기정비서비스계약(LTMSA)을 미국 영국 등과도 맺을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액이 당초 예상(2조∼3조원)보다 크게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수원은 당초 바라카 원전 사업으로 건설 분야 14만 개를 포함해 약 22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봤다. 수출효과는 21조원, 후속효과는 72조원으로 계산했다.
바라카 1호기는 2012년 건설을 시작해 지난해 완료됐다. 현재 나머지 2~4호기를 짓고 있다. 전체 UAE 원전의 준공률은 93% 정도다. 이르면 올해 말 상업가동을 시작한다. 바라카 원전 4기가 생산하는 전력은 UAE 전체 발전 용량의 약 25%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전업계 “탈원전 정책 탓”
정부는 UAE 정비계약을 단독 수주하지 못한 건 탈원전 정책과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4일 브리핑에서 “결국 우리가 UAE 원전의 정비를 주도적으로 담당하게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단독 수주하지 못한 건 UAE의 정책 변화일 뿐 한국의 에너지 전환 정책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전업계에선 탈원전 정책의 여파가 분명히 있었다고 지적한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국의 원전 공급망과 인력 체계 부실화를 우려한 UAE가 정비서비스 공급자를 다변화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국원자력학회도 이날 ‘탈원전 정책이 원전산업 인프라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서 “국내 원전 기술과 인력, 부품이 유지돼야 지속적인 수출이 가능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이 UAE 정비계약을 단독 수주하는 데 실패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국가의 건설 계약을 따내는 데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 미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 등과 사우디 원전 수주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박상덕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수석연구위원은 “탈원전을 선언한 국가의 수출 논리가 설득력을 잃을 건 뻔하다”며 “2~3년 사용하는 스마트폰도 단종될 모델이라면 꺼리는 판에 60~70년 돌릴 원전이라면 오죽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기술이전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바라카 원전 정비의 주도권이 UAE 측으로 넘어간 만큼 ‘하도급’을 맡은 한국 기업들은 일부 기술을 넘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과거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에 기술을 전수했듯) UAE를 지속적으로 도와줄 의무가 있다”며 “UAE 측이 정비 분야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하우를 제공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조재길/구은서 기자 road@hankyung.com
한국수력원자력은 23일(현지시간) UAE 아부다비에서 현지 원전 운영업체인 나와에너지와 정비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팀코리아에는 한수원 외에 한전KPS와 두산중공업이 참여하고 있다. 바라카 원전 정비계약은 한국형 APR1400 원전 4기(총 5600㎿)를 유지·보수 및 정비하는 프로젝트다. 이번 계약은 애초 예상됐던 LTMA 대신 장기정비서비스계약(LTMSA)으로 대체됐다. 팀코리아가 일괄 정비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일종의 하도급(용역)을 수주하게 됐다는 의미다. 10~15년으로 예상됐던 계약기간도 5년으로 단축됐다. 이에 따라 2조~3조원으로 전망됐던 계약액은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나와에너지는 한국 외에도 미국 영국 등 복수의 정비 사업자를 조만간 선정할 계획이다. 나와 측은 “우리가 바라카 원전의 정비작업을 주도하며 팀코리아는 개별 업무지시서에 따르게 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APR1400 운영 경험이 있는 만큼 우리가 UAE 정비사업에서 계속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원자력계는 탈원전 정책의 여파가 나타난 결과라며 아쉬워했다.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한국이 UAE와 원전 동반자 관계였는데 이제는 용역업체로 격하됐다”며 “한국에 단독 계약을 주지 않은 것은 탈원전에 대비한 위험관리 성격”이라고 평가했다.
물거품 된 UAE원전 단독정비…수천억짜리 '하도급 수주'로 전락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운영업체인 나와에너지가 한국수력원자력 등 한국 기업(팀코리아)에 단독·일괄 정비 계약권을 주지 않은 건 국내 원자력계에선 예상했던 결과다. 정부가 2017년부터 ‘탈(脫)원전’ 정책을 본격화한 뒤 원전부품 생태계에 대한 국내외 우려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UAE 측에선 ‘위험관리’ 차원에서 자체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복수의 정비 사업자를 두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작년 말부터 흘러나온 ‘UAE 이상신호’
UAE 바라카 원전은 한수원 등이 자체 기술로 만든 100% 한국형 모델(APR1400)이다. 고유 기술인 만큼 올초까지만 해도 한국이 장기정비계약(LTMA)을 단독 수주할 것으로 기대됐다.
‘이상 분위기’가 처음 감지된 건 작년 말이다. 장기서비스계약(LTSA)이 한국의 경쟁사인 프랑스전력공사(EDF)로 넘어갔다. 올해 초에는 무함마드 알하마디 UAE 원자력공사(ENEC) 사장이 서한을 보내 “LTMA 협상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한수원이 일방적으로 바라카의 핵심 인력을 철수시켰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심각하고 위험한 결정”이라고 경고했다. UAE가 ‘일방적인 인력 철수’라고 주장한 내용은 한수원 내부의 정기인사 이동이었다. 그만큼 UAE와 한국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란 평가다.
이번 정비계약 기간이 당초 예상(10~15년)보다 훨씬 짧은 5년에 불과한 데다 UAE 측이 복수의 사업자를 용역(하도급) 방식으로 선정하겠다고 밝힌 건 대단히 아쉬운 대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규직이 계약직으로 격하된 꼴이라는 얘기다. 나와에너지는 이번에 한국과 체결한 장기정비서비스계약(LTMSA)을 미국 영국 등과도 맺을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액이 당초 예상(2조∼3조원)보다 크게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수원은 당초 바라카 원전 사업으로 건설 분야 14만 개를 포함해 약 22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봤다. 수출효과는 21조원, 후속효과는 72조원으로 계산했다.
바라카 1호기는 2012년 건설을 시작해 지난해 완료됐다. 현재 나머지 2~4호기를 짓고 있다. 전체 UAE 원전의 준공률은 93% 정도다. 이르면 올해 말 상업가동을 시작한다. 바라카 원전 4기가 생산하는 전력은 UAE 전체 발전 용량의 약 25%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전업계 “탈원전 정책 탓”
정부는 UAE 정비계약을 단독 수주하지 못한 건 탈원전 정책과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4일 브리핑에서 “결국 우리가 UAE 원전의 정비를 주도적으로 담당하게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단독 수주하지 못한 건 UAE의 정책 변화일 뿐 한국의 에너지 전환 정책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전업계에선 탈원전 정책의 여파가 분명히 있었다고 지적한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국의 원전 공급망과 인력 체계 부실화를 우려한 UAE가 정비서비스 공급자를 다변화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국원자력학회도 이날 ‘탈원전 정책이 원전산업 인프라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서 “국내 원전 기술과 인력, 부품이 유지돼야 지속적인 수출이 가능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이 UAE 정비계약을 단독 수주하는 데 실패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국가의 건설 계약을 따내는 데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 미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 등과 사우디 원전 수주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박상덕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수석연구위원은 “탈원전을 선언한 국가의 수출 논리가 설득력을 잃을 건 뻔하다”며 “2~3년 사용하는 스마트폰도 단종될 모델이라면 꺼리는 판에 60~70년 돌릴 원전이라면 오죽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기술이전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바라카 원전 정비의 주도권이 UAE 측으로 넘어간 만큼 ‘하도급’을 맡은 한국 기업들은 일부 기술을 넘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과거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에 기술을 전수했듯) UAE를 지속적으로 도와줄 의무가 있다”며 “UAE 측이 정비 분야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하우를 제공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조재길/구은서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