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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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기업 페이스북의 가상화폐(암호화폐) 프로젝트 '리브라(Libra)'가 모습을 드러냈다. 리브라 코인이 상용화되면 약 24억명에 달하는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은행계좌 없이도 전 세계 어디에서든 송금·결제가 가능해진다.

금융계좌를 개설하지 않은 전세계 17억 인구도 리브라의 잠재 고객이다. 페이스북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에 암호화폐 지갑이 설치되면 페이스북 계정이 있는 사용자 누구나 암호화폐로 금융계좌나 별도 인프라 없이도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페이스북 코인으로 환전해 결제하는' 암호화폐 경제 순환 구조의 출발점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24억 페이스북 이용자가 쓴다

빠르면 내년 상반기 출시될 리브라 코인은 미국 달러화, 일본 엔화,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등 법정화폐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 코인(변동성이 거의 없는 암호화폐)이다.

다양한 통화와 단기 국채 등을 연동해 일정 가치를 담보하므로 가격 변동폭이 매우 작다. 암호화폐 상용화 걸림돌인 변동성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돼 결제 용도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리브라 코인이 결제 용도로 대중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 먼저 은행과 카드사가 직격탄을 맞는다. 국적과 무관하게 리브라 코인으로 손쉽게 결제할 수 있게 되면 굳이 로컬 은행이나 카드사 시스템을 이용할 유인이 사라진다. 페이스북 계정만 있으면 누구든 즉시 결제가 가능해서다.
페이스북의 가상화폐(암호화폐) 프로젝트 '리브라'가 공개됐다(사진=페이스북)
페이스북의 가상화폐(암호화폐) 프로젝트 '리브라'가 공개됐다(사진=페이스북)
심지어 은행 시스템이 전무한 제3국이나 오지에서도 상대방이 페이스북 계정만 있으면 리브라 코인으로 즉시 결제할 수 있다. 결제 후 실제 현금이 들어올 때까지 며칠씩 기다릴 필요도 없다. 결제 즉시 이용자 페이스북 지갑으로 암호화폐가 바로 들어오고, 수수료도 제로에 가까워진다.

최근 가입자 1억5000만명을 보유한 미국 이동통신사 AT&T가 비트코인 결제를 채택하는 등 기업들의 암호화폐 결제 채택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세계 최대 신용카드 결제 서비스사인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리브라 컨소시엄'에 참여한 것은 이같은 미래에 대한 발빠른 대처로 풀이된다.

◆ 전세계 금융당국 '초긴장'

리브라 코인의 등장은 각국 법정화폐의 지위를 위협한다. 각국 금융계 수장들이 리브라 코인에 연일 경계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브뤼노 르 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리브라가 '국가 통화'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강력 비판했다. 필립 로우 오스트레일리아준비은행 총재도 "페이스북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주요 7개국(G7)은 리브라 코인이 기존 화폐를 대체할 가능성에 대비해 관련 테스크포스(TF)를 꾸리고 규제 검토에 나섰다. 국제결제은행(BIS) 역시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이 제공하는 금융서비스가 데이터를 무기로 단숨에 시장을 지배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리브라 코인이 상용화되는 순간부터 국가 차원 통화정책이 무력화될 수 있어서다.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리브라 코인으로 환전해 결제하는 구조에서는 암호화폐 단에서만 자금이 순환돼 실물 화폐가 설 자리를 잃는다.
페이스북이 내놓는 암호화폐 지갑 '칼리브라'(사진=페이스북)
페이스북이 내놓는 암호화폐 지갑 '칼리브라'(사진=페이스북)
◆ 한국은 조용한 이유 있다

각국 금융 당국이 리브라 코인 등장에 초긴장 상태지만 우리나라는 비교적 조용하다. 기존 정책 기조를 유지하려는 의도일 수 있지만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리브라 백서의 한국어 번역본이 제공되지 않아 아직 본격적 논의가 시작되지 못한 것.

페이스북이 공개한 리브라 코인 백서는 영어·일어·중국어·독일어·프랑스어·러시아어·포르투갈어·스페인어·인도네시아어 등 전세계 언어로 번역됐지만 한국어는 제외됐다. 주요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페이스북 이용자가 적고 시장 크기가 작아 벌어진 일이지만 업계 시각은 달랐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만약 2017년에 페이스북이 암호화폐를 출시했다면 한국어 버전 백서를 포함시켰을 것"이라며 "약 2년새 한국은 암호화폐 선도국에서 후진국으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다른 관계자도 "암호화폐는 최근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자산으로 인정하고 자금세탁방지(AML)와 관련해 기존 금융권 수준의 권고안을 발표했다.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 역시 해당 권고안을 따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면서 "우리도 서둘러 대비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국가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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