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하는 나경원과 이인영 (사진=연합뉴스)
악수하는 나경원과 이인영 (사진=연합뉴스)
뜻밖의 급진전이었다.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전격 합의안을 도출하면서 국회 정상화의 물꼬가 트이는 듯 싶었다.

지난 24일 국회에서 여아가 머리를 맞대면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심사와 법안심사 등 밀린 과제 해결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는 수순에 돌입했다.

하지만 한국당 소속 강경파 의원들이 이 합의문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의원총회에서 추인은 불발됐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결국 여야 3당 원내대표의 국회 정상화 합의문에 대해 무효를 선언할 수 밖에 없었다.

나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의원들이 조금 더 분명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며 "당의 입장에서는 추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합의문을 도출하면서 한발짝 물러난 모습을 보였던 더불어민주당 또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앞서 3당 원내교섭단체 대표 회동을 마친 뒤 "패스트트랙 추진 과정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국회가 파행 사태를 반복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면서 "한국당이 국회에 복귀하면 한국당 안을 포함해 처음부터 논의를 재개한다는 정신으로 합의 정신에 따라 처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결국 합의문이 무효가 되자 이 원내대표는 "할 만큼 했다. 국민의 여망을 한국당이 외면한 것이다"라고 책임을 돌렸다.

이어 "이렇게 깨져버릴 약속이라면 어떤 약속도 우리는 지킬 수 없게 된다"며 "한국당이 소수 강경파에 휘둘려서 정략적 판단을 반복한다면 더는 어떤 협상도 있을 수 없다"며 한국당의 재협상 요구를 일축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한국당이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 간의 국회 정상화 합의안 추인을 거부한 데 대해 "이 정도로 무책임한 정당이면 공당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협상을 통해 만들어 낸 합의문이 거부당한 이상 더는 새롭게 협상할 내용이 없다"며 "중재 역할도 여기서 마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사실상 ‘중재 포기’를 선언했다.
합의문 발표하는 3당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합의문 발표하는 3당 원내대표 (사진=연합뉴스)
3당 합의문 도출에 나섰던 나 원내대표의 리더십에도 큰 흠집이 났다.

나 원내대표가 "책임 있는 여당으로서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재협상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하루 만에 재협상을 요구한 데 대해 이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새로운 협상이 가능할 거라는 착각은 꿈도 꾸지 말길 바란다"고 일축했다.

이에 나 원내대표는 "정치는 꿈과 상상력을 키워가는 과정인데 꿈도 꾸지 말라니. 어이가 없다"고 반박했다.

표면적으로 한국당 지도부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지는 않았지만 나 원내대표가 합의안 도출과 관련해 결정과정에서 황교안 당 대표와 협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원 총회에서 합의안 추인이 불발되면서 원내 원외 지도부의 리더십도 도마위에 올랐다.

당 대표들이 만나 만든 합의안이 불발되자 나 원내대표의 입지가 줄어들었다는 분석이 많다.

소수지만 의총에서는 불신임 얘기까지 나왔으며 김태흠 한국당 의원은 이인영 원내대표를 비판하면서도, 나경원 원내대표에도 '구걸하듯 하지 말라'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파격적인 국회 정상화 합의문이 타결될 당시 정국은 북한 선박의 삼척 입항으로 시끄러웠다. 한국당은 북한선박 입항과 관련해 "안보의 안전해체를 넘어 모든 것이 은폐·조작됐다는 것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고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국회 정상화가 되면서 한국당이 요구한 목선 어선 귀순 관련 청문회로 허술했던 국방을 더욱 이슈화 했다면 국민들의 지지도 또한 높아졌을 수 있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최근 아들 스펙관련 구설수에 휘말린 황교안 대표가 앞으로 백브리핑을 생략하기로 하고 말을 아낀 것도 나 원내대표와 합의를 끝낸 합의문이 의원 총회 추인에 실패하자 '유구무언'이 아니었느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당리당략에 얽매이는 국회 정상회 비난으로 국민들의 공분도 더해지는 형국이다.

문제는 추경안이다. 민주당이 의사 일정을 한국당 없이 진행하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한국당의 협조 없이 추경안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선 추경안을 심사해야 할 예결위원장은 한국당 몫이다. 예결위원장은 예결위 소집·사회 등 권한을 지닌다.

또 지난 5월 예결위원들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새 위원들로 예결위를 꾸려야 하지만 한국당은 명단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예결위 구성을 저지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추경 보이콧'에 나선 셈이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26일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 나와 "국회 정상화와는 별개로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와 김현준 국세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군 경계망을 뚫고 삼척항에 들어온 북한 목선 문제와 인천의 붉은 수돗물 문제 관련 상임위원회는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한국당의 방침은 뷔페 식당에서 자기 먹고싶은 먹만 먹겠다는 것인데. 그런 건 국회가 아니다. 국회는 국정 전반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이어 "지금 황교안, 나경원 리더십이 의원들에 의해 시험대에 올라와 있는데 이렇게 끌려 다니면 황교안 나경원은 살아서 돌아오기 힘들다"면서 "이럴 때는 지도자답게 앞장서서 설득하고 들어가자, 이런 단호한 모습을 보여야 박수를 받는다"고 덧붙였다.

이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스스로를 패싱하고 고립시킨 자유한국당의 몽니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더 이상은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 국회공전은 물론, 일하는 국회를 방해하는 행위도, 더 이상은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