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귀속 결정 대상 아니었던 토지 4㎡만 환수 결정
이미 처분한 토지 매각 대금 중 3억5천여만원도 반환 판결
국가, 친일파 이해승 땅 소송 사실상 패소…4㎡만 환수
국가가 친일파 이해승(1890∼1958)의 후손을 상대로 낸 토지 환수 소송에서 사실상 패소했다.

서울고법 민사13부(김용빈 부장판사)는 26일 국가가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그랜드힐튼 호텔 회장을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 등기 소송의 항소심에서 이 회장이 물려받은 토지 중 1필지만 국가에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이 땅은 면적 4㎡에 불과해 사실상 '친일파 재산 환수'의 의미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랜드힐튼 호텔 부지 등 대부분의 토지는 그대로 이해승 후손의 몫으로 남게 됐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는 2007년 이해승을 친일재산귀속법이 규정한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로 보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했다.

이에 따라 이해승의 손자가 상속받은 재산 일부인 땅 192필지를 국가에 귀속하기로 했다.

이 땅의 가치는 당시 시가로 300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승의 손자는 국가귀속 처분을 취소하라며 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고, 친일재산귀속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2010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친일재산귀속법은 재산 귀속 대상을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라고 규정했는데, 이해승의 손자는 "후작 작위는 한일합병의 공이 아니라 왕족이라는 이유로 받은 것이므로 재산 귀속 대상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폈다.

비난 여론이 일자 국회는 2011년 친일재산귀속법에서 '한일합병의 공으로'라는 부분을 삭제했다.

아울러 개정법을 소급 적용할 수 있다는 부칙도 신설했다.

국가는 대법원의 2010년 판결이 절차상 잘못됐다며 재심을 청구하는 한편 이해승 손자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냈다.

그러나 대법원은 국가가 재심 청구 기간(사유 발생일로부터 30일)을 넘겨 이의를 제기했다며 2016년 12월 청구를 각하했다.

민사 소송을 담당한 1심 재판부도 개정법 부칙에 담긴 단서 조항을 근거로 지난해 4월 국가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 부칙은 '위원회가 개정 전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경우 개정된 규정에 따라서 결정한 것으로 본다.

다만, 확정판결에 따라 이 법의 적용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정된 경우에는 그러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이 회장이 확정판결을 받은 토지에 대해선 개정법을 소급해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환수 결정을 내린 1필지는 당초 국가귀속 대상 토지에 포함되지 않은 땅이다.

재판부는 다만 이 회장이 이미 처분한 부동산의 매각대금 중 3억5천여만원은 국가에 환수하라고 판결했다.

부당 이득 환수 대상이 된 토지는 이 회장 측이 반민족규명법과 친일재산귀속법이 발의·제정된 2004년 4월∼2005년 1월 집중적으로 처분한 땅이다.

이 회장은 소송에서 '이미 처분한 땅의 대금을 토해내라는 건 시효가 지나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신의 성실의 원칙에 어긋나는 권리 남용"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친일재산 귀속법의 목적은 헌법적으로 부여된 당위"라며 "친일재산을 국가에 귀속시켜야 할 공익상의 필요가 피고가 입을 불이익을 정당화하는 것 이상으로 압도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이해승이 친일재산을 보유하고 대대로 부귀를 누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그 손자인 피고도 일제강점기하 이해승의 행적과 재산을 취득한 경위, 경과를 잘 알고 있다"며 반환하는 것이 맞는다고 지적했다.

이해승은 철종의 아버지인 전계대원군의 5대손으로 한일강제병합 직후인 1910년 10월 일제로부터 조선 귀족 중 최고 지위인 후작 작위를 받았고, 자발적 황국신민화 운동을 벌이고자 결성된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활동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