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중소기업의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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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베트남 하노이는 한국 기업인으로 늘 북적댄다. 이곳에 있는 한 한국상공인단체에도 투자여건을 알아보기 위해 줄잡아 1년에 수백 명이 찾아온다고 한다.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 러시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베트남 투자청에 따르면 작년 말까지 한국 기업은 7459건, 625억달러를 투자했다. 일본 싱가포르 대만을 밀어내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 투자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2015년 1029건, 2016년 1263건, 2017년 1339건, 작년엔 1446건에 달했다.
기자가 처음 베트남 취재를 간 2006년 무렵 이곳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1000개 정도에 불과했다. 의류 신발 등 노동집약적 제품 중심이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12년 새 약 일곱 배로 늘었다. 투자 패턴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4000만달러 이상을 투자한 한국 기업의 프로젝트는 폴리프로필렌 폴리에스테르 태양광개발 풍력개발 탄소섬유 제약 등이다. 점차 자본집약형, 기술집약형 업종으로 변하고 있다.
12년 새 7배로 는 베트남 진출
현지에선 대기업의 휴대폰 공장과 이 회사 협력업체가 대거 진출한 뒤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소강상태를 보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그러는 동안 국내 공장 밀집지대 곳곳엔 임대 간판이 내걸리고 공동화(空洞化)가 진행되고 있다. 중소기업 가동률은 70%대 초반에서 허우적거린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로 내걸고 있지만 남동 반월 구미 창원 울산 등 전국 37개 주요 국가산업단지의 고용인원은 지난 4월 말 기준 99만6347명으로 100만 명 선이 붕괴됐다. 1년 전에 비해 2만1814명 줄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기업의 베트남 진출을 단순히 글로벌 전략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으로만 볼 것인가. 그러기엔 상황이 간단치 않다. 베트남에 공장을 짓고 있는 한 중소기업의 K사장은 “국내에 투자해야 할 이유가 한 가지라도 있으면 말해달라”며 “베트남 투자는 곧 한국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베트남 투자기업인이 모두가 K사장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상승, 주 52시간 근로제를 비롯해 각종 규제와 비용 상승 때문에 한국을 떠나는 중소기업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해당 업종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부가가치도 높아 굳이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는데도 공장을 이전하는 업체들이 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기술집약업종의 탈출 막아야
K사장이 그런 사례다. 그는 “내년 1월부터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면 일감이 몰릴 때 범법자가 될 수도 있다”며 “국내엔 연구개발과 간단한 테스트 시설만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업체 하나만으로도 약 100개의 국내 일자리가 사라질 전망이다. 기술집약적인 기업의 엑소더스를 막지 못하면 국내 일자리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개방경제 시대에 ‘기업하기 좋은 환경’ ‘투자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지 않으면 기업은 떠나기 마련이다. 지난해 국내 중소기업의 전체 해외 투자(미주·아시아·유럽 등 포함)는 100억1500만달러로 2017년보다 31.7% 증가했다. 올 들어서도 이런 현상은 이어지고 있다.
이젠 ‘일자리 만들기’보다 ‘일자리 유지’가 더 시급한 과제인지도 모른다. 이런 엑소더스가 몇 년간 이어지면 국내 일감과 일자리는 가파른 속도로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더 늦기 전에 해결방안을 놓고 각계각층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nhk@hankyung.com
기자가 처음 베트남 취재를 간 2006년 무렵 이곳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1000개 정도에 불과했다. 의류 신발 등 노동집약적 제품 중심이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12년 새 약 일곱 배로 늘었다. 투자 패턴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4000만달러 이상을 투자한 한국 기업의 프로젝트는 폴리프로필렌 폴리에스테르 태양광개발 풍력개발 탄소섬유 제약 등이다. 점차 자본집약형, 기술집약형 업종으로 변하고 있다.
12년 새 7배로 는 베트남 진출
현지에선 대기업의 휴대폰 공장과 이 회사 협력업체가 대거 진출한 뒤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소강상태를 보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그러는 동안 국내 공장 밀집지대 곳곳엔 임대 간판이 내걸리고 공동화(空洞化)가 진행되고 있다. 중소기업 가동률은 70%대 초반에서 허우적거린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로 내걸고 있지만 남동 반월 구미 창원 울산 등 전국 37개 주요 국가산업단지의 고용인원은 지난 4월 말 기준 99만6347명으로 100만 명 선이 붕괴됐다. 1년 전에 비해 2만1814명 줄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기업의 베트남 진출을 단순히 글로벌 전략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으로만 볼 것인가. 그러기엔 상황이 간단치 않다. 베트남에 공장을 짓고 있는 한 중소기업의 K사장은 “국내에 투자해야 할 이유가 한 가지라도 있으면 말해달라”며 “베트남 투자는 곧 한국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베트남 투자기업인이 모두가 K사장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상승, 주 52시간 근로제를 비롯해 각종 규제와 비용 상승 때문에 한국을 떠나는 중소기업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해당 업종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부가가치도 높아 굳이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는데도 공장을 이전하는 업체들이 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기술집약업종의 탈출 막아야
K사장이 그런 사례다. 그는 “내년 1월부터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면 일감이 몰릴 때 범법자가 될 수도 있다”며 “국내엔 연구개발과 간단한 테스트 시설만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업체 하나만으로도 약 100개의 국내 일자리가 사라질 전망이다. 기술집약적인 기업의 엑소더스를 막지 못하면 국내 일자리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개방경제 시대에 ‘기업하기 좋은 환경’ ‘투자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지 않으면 기업은 떠나기 마련이다. 지난해 국내 중소기업의 전체 해외 투자(미주·아시아·유럽 등 포함)는 100억1500만달러로 2017년보다 31.7% 증가했다. 올 들어서도 이런 현상은 이어지고 있다.
이젠 ‘일자리 만들기’보다 ‘일자리 유지’가 더 시급한 과제인지도 모른다. 이런 엑소더스가 몇 년간 이어지면 국내 일감과 일자리는 가파른 속도로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더 늦기 전에 해결방안을 놓고 각계각층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