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디지털화 시대에 필름 지켜낸 CEO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났을 당시 많은 피해자가 폐허가 된 집터에서 필사적으로 찾은 것은 ‘필름사진’이었다. 후지필름은 당시 바닷물과 흙에 더럽혀진 피해자들의 필름사진 수백만 장을 무료로 복구해줬다. “인쇄사진은 여전히 인간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기에 사명감을 갖고 사진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고모리 시게타카 후지필름홀딩스 회장의 경영철학이 이어져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모리 회장이 쓴 《후지필름, 혼의 경영》은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찾아온 최대 위기를 극복한 후지필름의 혁신 전모를 소개한다. 미국 필름 제조회사 코닥은 사진의 디지털화라는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2012년 파산 신청을 하며 무너졌다. 반면 후지필름은 2017년 매출 24조3340억원, 영업이익 1조3070억원을 올리는 등 여전히 건재하다. 1963년 입사해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에 이어 회장 자리까지 오른 저자가 위기를 맞아 ‘철저한 구조개혁’ ‘새 성장 전략 구축’ ‘연결 경영 강화’라는 3대 개혁을 추진한 덕분이다.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라는 축구 격언처럼 그는 단순한 구조조정에 그치지 않고 기존 필름 기술을 활용해 신사업인 의료용 엑스레이 기기를 비롯해 재생 의료, 디스플레이 재료, 복합기 프린터와 연계한 솔루션 서비스 사업 등에 뛰어들었다. 인스탁스라는 즉석 인화용 카메라 브랜드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진’이란 콘셉트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도 “20세기 이후 인류 문화와 함께해온 필름사진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필름 사업을 존속시킨 저자의 확신 덕분이었다. 저자는 “난 한번 정한 일은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누구보다 과감히 실행해왔다”며 “다소 저항이 있어도 조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선 해야 할 일을 단호히 하는 게 리더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위기 상황 때 경영자가 해야 할 네 가지를 제시한다. △자기 상황을 정확히 읽고 △무엇을 해야 할지 전략을 구상하며 △경영자의 의지를 조직 구석까지 전달하고 △한번 정한 결단을 끝까지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플리토 전문번역가그룹 옮김, 한국CEO연구소, 232쪽, 1만5000원)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