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왼쪽)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 대표, 조경태, 김광림 최고위원.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왼쪽)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 대표, 조경태, 김광림 최고위원. /연합뉴스
국회 정상화 합의문이 의원총회에서 불발된 뒤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휘청거리고 있다. 더 이상의 협상을 중단하고 조건 없이 등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당 내부에서 이어지면서 ‘강경 투쟁파’와 갈등을 빚고 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 때 고소·고발된 의원들에 대한 경찰 소환 조사가 시작되면서 “지도부가 시킨 대로 싸워서 얻은 게 뭐냐”는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 당 요직인 사무총장 자리까지 열흘째 공석으로 비워둘 정도로 지도부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강경파 - 복귀파 갈등 터져나와

파행이 길어지면서 국회 정상화 방법론을 두고 한국당 내부에서 혼란이 심해지고 있다. 김용태 의원은 27일 라디오에 출연해 “명분상 등원에 어려움이 있지만, 국민에게 지는 것이 진정 이기는 정치라는 관점에서 볼 때 결단을 내려 국민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의총 전까지는 일부 온건파를 중심으로 복귀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왔다면 의총 추인이 불발된 이후엔 수도권 중진과 초·재선 의원까지 나서 ‘조건 없는 등원’에 공개적으로 힘을 보태는 모양새다. 앞서 조경태 의원을 비롯해 황영철, 장제원, 이학재 의원 등도 조건 없는 등원을 요구했다.

한국당 초·재선 의원 모임인 ‘통합과 전진’은 이날 회의를 열고 국회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좌장을 맡은 박완수 의원은 “지금 우리 당이 하고 있는 선별적 등원 방침에 대해 여론은 물론 당 내부에서도 여러 얘기가 많다”며 “흩어진 의견을 모아 당 지도부에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비공개 모임에선 조건 없는 국회 등원을 비롯해 여러 등원 방법론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진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등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한국당 지도부는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한 ‘합의 처리’가 필요하다는 원칙만 반복하면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조건 없는 등원’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논의해보겠다”고만 했다. 황교안 대표도 의총 이후 이렇다 할 방향 제시를 하지 않고 있다. 한국당 관계자는 “국회 정상화를 두고 당이 분열되고 있는 상황인데 지도부가 제대로 된 리더십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당 지도부가 등원파와 투쟁파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전히 TK(대구·경북)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많은 한국당 의원은 조건 없는 등원에 반대하면서 강경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 한 TK 지역 의원은 “패스트트랙 정국 때 고소·고발된 의원들에 대한 경찰 소환 조사까지 시작됐는데 얻은 것도 없이 정부 여당에 ‘백기 투항’할 수는 없다”며 “여당의 선거법 강행 처리에 대해서는 전면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도부 지침은 오락가락

한국당 지도부가 당내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강경파와 온건파 모두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선거법 개정안 등의 패스트트랙 처리에 맞서 투쟁을 이어왔지만 특별한 성과를 얻어내지도 못했고, 국회에 들어갈 시기도 놓쳤다는 것이다. 그동안 국회 등원을 주장해온 한 등원파 의원은 “지도부는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싸워서 얻어낸 게 없다는 강경파의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며 “그동안 수없이 국회에 등원해야 한다고 말해 왔지만 무시당해온 온건파 입장에선 나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긴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도부가 투쟁 방식으로 제시한 ‘선별적인 상임위 등원’ 방침도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도부가 제시하는 출석 기준이 오락가락하면서다. 외교통상위원장인 윤상현 의원은 “만약 북한 목선만 논의하기 위해 상임위를 연다고 하면 민주당에서 받아주겠냐”며 “외통위처럼 중요한 상임위는 절대 정쟁에 휩쓸려선 안 된다”고 지도부의 선별적 상임위 방침에 따르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나 원내대표는 이날 인사청문회와 붉은 수돗물, 북한 어선 등과 관련된 상임위에만 선별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하면서도 “아주 긴급한 사안에 대해서는 업무보고에 참여할 수 있다”며 “이 부분은 조금 더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당 핵심 요직인 사무총장 직도 지도부가 인선하지 못해 열흘째 공석이다. 지도부가 여러 의원에게 사무총장을 제안하고 있지만 공천 실무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고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선인 이진복 의원이 유력하게 논의됐지만 이 또한 불투명해졌다. 한국당 관계자는 “친박 중진 의원들의 반대가 심했던 것으로 안다”며 “계파도 고려해야 하고 지역 균형과 선수까지 맞는 적임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가 한국당 내 혼란을 해결할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나 원내대표가 협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시점은 이미 지났다는 것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황 대표가 어떤 방식으로든 직을 걸고 의원들의 총의를 모을 수 있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당 내 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