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겟] 조선호텔이 20~30대 고객을 끌어들인 비결은? '헤렌디' 마케팅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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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너겟(nugget). 한 입에 쏙 들어가는 음식, 혹은 작지만 가치 있는 생각을 뜻한다. 모든 위대한 혁신은 사소한 아이디어, 너겟에서 출발한다. 성공적인 전략이나 혁신 사례를 거꾸로 되짚어 그것들이 어떤 사소한 너겟에서 출발했는지 찾아본다.
‘리복의 딜레마’. 1980년대 리복이 ‘프리스타일’을 출시하면서 기존 고객층이 아니었던 주부층으로 소비자층을 넓히려도 시도했다가 실패한 전례가 있다. 무리하게 고객층을 넓히려다가 핵심역량을 수정하게 되면 기존 고객들까지 이탈해버린다는 교훈을 남긴 사례로 종종 거론된다. 서울 중구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서울. 서울시내 대표적인 특급호텔 중 하나다. 세계적으로 특급 호텔의 공통된 고민이 있다. 주 고객층이 갈수록 노화하고 있다는 것.
그런데 조선호텔은 다르다. 호텔 이곳 저곳에서 셀피를 찍고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스시조, 나인스게이트, 라운지앤바 등 주요 영업장 방문객 2명중 한 명이 20~30대다. 중요한 건 기존 고객층 이탈도 없었다는 점이다.
조선호텔 내 레스토랑 나인스게이트. 최근 밤 9시 이후 와인을 50% 할인해주는 프로모션을 시작한 나인스게이트는 프로모션 전에 비해 하루 매출이 무려 100% 늘었다.
재방문율은 80%에 달한다. 나인스게이트를 찾는 젊은 소비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새로운 방문객 10명 중 8명이 20~30대다. 확실히 새로운 고객층을 발굴하는 데 성공한 모습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질문 한가지. 업계 상황이 좋으니까 덩달아 잘 된 것은 아닐까? 잠시 2년 전으로 가보자. 2016년 호텔업계에 불황을 몰고 온 사건이 있었으니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 정부의 경제보복. 이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이 대거 줄어들자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신규 호텔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한국 호텔업계에는 엄청난 타격이 있었다.
그런데 작은 변화의 조짐이 보인 것도 이 즈음이었다. 조선호텔 내 일식당 스시조를 찾는 젊은 사람들이 2016년부터 늘기 시작한 것이다. 호텔 관계자에 따르면 2016년부터 매일 2~3팀이 스시조를 찾기 시작했고, 점점 젊은 사람들이 늘면서 2017년부터는 이 영업장 방문객 두 명 중 한 명이 20~30대가 됐다고 한다. 그럼 이들은 왜 언제 호텔에 오는 것일까? 조선호텔은 소비자행동을 관찰했다. 다찌에서 셰프들이 얘기를 나눠보면 젊은 고객들은 주로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방문했다고 한다.
이들이 호텔에서 얻고자 하는 경험은 홍대나 이태원같은 젊은 문화가 아니었다. 오히려 고전적인 장소에서 근사한 경험을 하고 싶어서 찾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너겟이 나온다. 조선호텔은 2017년 서울 소공동 호텔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하면서 ‘헤렌디’라는 컨셉트를 도입했다. 헤렌디는 ‘헤리티지+트렌디’를 합친 말이다. 헤리티지, 즉 예스러운 서비스와 상품이 기존 시니어 고객층에게는 익숙한 편안함인 동시에 젊은층 소비자에게는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그런 신선한 경험이었다.
결국 헤리티지에 트렌드를 살짝 더하면서 조선호텔은 호텔의 고전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아주 약간의 진입장벽을 낮춘 것이다. 흔히 젊은층을 데려오려면 공간을 톡톡 튀게 디자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조선호텔은 오히려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 완전히 고전적인 인테리어로 바꿨다. 테이블과 바는 호텔 인근 문화재인 ‘환구단’이 잘 보이도록 재배치했다. 바텐더들은 서스펜스를 활용해 ‘모던보이’같은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동시에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도록 사진과 동영상 찍기 좋은 신메뉴를 개발했다. 삼계탕 모양 삼복빵, 파스타 알리오올리오 빵 등… 재치있는 신메뉴가 이렇게 탄생했다. 아예 메뉴를 개발할 때부터 비주얼을 생각하면서 기획을 하기도 한다. 음식을 서빙할 때 사진 찍을 시간을 따로 내주는 센스도 발휘했다. 사진 찍기 눈치 보이는 권위적인 레스토랑 분위기를 벗어난 것이다..
재미를 더하면서도 정중한 애티튜드는 잃지 않았다. 가령 나인스게이트에서 와인과 치즈를 주문하면 트롤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각 치즈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젊은이들의 발길이 빵집으로도 오고, 레스토랑에도 오고, 라운지에도 이어진 것이다. 기존에 자신의 브랜드가 가지고 있던 장점은 강조하면서도 진입장벽은 살짝 낮춘 것. 소비자 행동을 세심히 관찰한 데서 탄생한 조선호텔의 너겟이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