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롬 스타일러·트윈워시 개발… 보유 특허만 1000개 이상
꼬박 9년 걸린 스타일러, 조성진 부회장 "구김제거에 스팀 써보자" 제안
영화 '너는 내 운명'으로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황정민은 이렇게 말했다. 화려한 수식어나 세련된 미사여구는 없지만 10년 이상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인상적인 수상 소감이다.
의류관리기의 대명사로 떠오른 '트롬 스타일러'를 개발한 LG전자의 김동원 연구위원(사진)은 최근 엔지니어 최고 영예인 '올해의 발명왕' 상을 받았다. 그도 인터뷰 첫 머리에 "황정민씨 말처럼 저는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특허청과 한국발명진흥회는 매년 발명과 과학기술 개발을 통해 산업발전과 국가경쟁력 제고에 크게 기여한 발명가 중 단 한 사람에게 '올해의 발명왕'을 수여한다.
수상 소감을 묻자 김 연구위원은 "매우 영광스럽고 기쁜 동시에 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서 "같이 고생한 팀원들, 특허센터와 수상의 영예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겸양과 달리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의류관리기라는 새 시장을 개척한 '트롬 스타일러', 드럼세탁기 하단에 통돌이 세탁기를 결합한 '트롬 트윈워시'가 김 연구위원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보유 특허만 1050여건에 달한다.
LG전자 내에서 소문난 발명왕인 김 연구위원이 꼽은 자신의 대표 특허도 바로 스타일러의 핵심 기술인 '무빙행어'다.
스타일러는 1분에 최대 200회 옷을 흔들어 옷에 달라붙은 미세먼지를 제거하고, 고온 스팀(증기)으로 옷의 구김을 줄여주는 신개념 가전. 연구·개발(R&D)에 장장 9년이 걸렸다.
김 연구위원은 "구김을 제거하려면 습기, 온도, 기계력(기계로 일하는 힘) 3요소가 필수다. 고온 스팀을 이용해 습기와 온도 두 가지 요소는 충족했지만 기계력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컸다"며 "무거운 추를 달거나 집게로 의류를 당겨보자는 아이디어도 나왔지만 사용하기에 번거롭다는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젖은 빨래를 건조대에 널기 전에 2~3번 탁탁 털어 옷감을 펴준다는 점을 떠올렸다. 빠른 속도로 옷감을 흔들어 먼지를 털어내는 무빙행어 기술은 그렇게 탄생했다. 김 연구위원은 당시 세탁기 사업부장이던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역시 스타일러 개발에 큰 도움을 줬다고 귀띔했다.
"의류의 구김을 어떻게 자동으로 제거할지가 첫 걸림돌이었어요. 고민하던 차에 연구소를 찾아온 조성진 부회장이 '출장 갔을 때 호텔 욕실에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구겨진 양복을 걸어뒀더니 펴지더라'면서 스팀을 이용해보자고 하더군요."
냄새 제거 성능을 평가하기 위해 삼겹살집이나 담배 연기 자욱한 당구장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에피소드는 이제 재미있는 추억이 됐다.
김 연구위원은 실생활에서의 구김과 냄새 시료를 얻기 위해 출퇴근하는 주변 연구원들에게 샘플 의류를 입혔다. 퇴근 후엔 삼겹살집에서 회식하고 흡연이 가능한 당구장을 찾도록 했다. 의류 수거는 김 연구위원이 맡았다.
그는 "실험실에서 삼겹살과 고등어를 구워 몇 차례 사내에서 민원이 들어온 적 있다. 모피, 양복 등 고급 의류 손상 여부를 실험하려고 백화점에 들러 한꺼번에 수천만원어치 옷을 산 적도 있는데 날 수상하게 쳐다보는 백화점 직원의 눈초리가 기억난다"며 웃어보였다.
지난해 스타일러의 누적 판매량은 20만대, 월 평균 1만대 이상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의류관리기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한다.
김 연구위원은 "발명이 꼭 새롭고 거창한 건 아니다. 특히 가전처럼 오래된 기술과 제품이 있는 분야에선 이미 알려진 기술을 조합해 새로운 효과를 내는 것 또한 발명"이라며 "스타일러에 적용된 히트펌프, 스팀 등 주요 기술도 이 세상에 없었던 기술이 아니다. 다만 제품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던 건데,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특허 받는 발명도 나온다"고 전했다.
이어 '제2의 김동원'을 꿈꾸는 예비발명가들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문제점을 집요하게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찾아가는 습관이 좋은 발명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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