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에 무슨 일이…'주류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유예
국세청이 주류업체와 도매상이 술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오가는 리베이트를 근절하겠다며 추진한 ‘주류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이 무기한 연기됐다. 이 제도는 리베이트를 주고받으면 양쪽 모두 처벌해 거래를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명분만 보면 반대할 사람이 소수밖에 없을 것 같은 제도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국세청이 시행하려 한 제도가 좌초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프랜차이즈업계 등이 공개적으로 반발했고,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았다. 국세청의 밀어붙이기식 행정, 시장과의 소통 부재 등이 ‘행정 고시 유예’라는 상황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국세청의 쌍벌제, 왜 나왔나

국세청에 무슨 일이…'주류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유예
리베이트는 ‘판매장려금’이라고 부른다. 주류 회사들은 술을 많이 사가는 도매상에게 현금으로 리베이트를 준다. 1200개 정도 되는 전국 도매상이 식당이나 술집 등에 술을 공급한다. 도매상은 아무나 할 수 없다.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면허를 대물림하기도 하고, 고액에 거래하기도 한다. 택시 번호판과 비슷하다. 이 리베이트는 원래 불법이다. 하지만 수십 년간 관행처럼 주고받았다.

리베이트는 술 제조·수입사가 판매 금액의 일정 비율을 도매상에게 지급하거나, 판매 물량에 따라 일정 비율 깎아주거나 덤을 얹어주는 방식으로 오간다. 매출 3000억원대를 올리는 주류 회사가 700억원가량을 리베이트 비용으로 쓰는 구조가 굳어졌다. 호황일 때는 문제가 없었다. 외식 경기가 침체하고, 고가 주류 소비가 줄면서 문 닫는 소매업체가 생겼다. 도매상도 타격을 받았다. 도매상이 식당과 유흥업소에 술을 공급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리베이트를 적게 받는 소규모 도매상은 더 불리한 상황에 몰렸다.

일부 도매상의 ‘갑질’도 문제로 불거졌다. “경쟁사는 얼마 주던데, 왜 이것밖에 안 주냐”며 많은 리베이트를 요구하거나 인테리어를 제조사에 떠맡기는 경우도 있다. 연간 수천억원대의 판매장려금이 시장에 뿌려지지만 소비자 혜택으로 이어지지 않고 일부 도매상의 배만 불린다는 게 정부의 문제의식이었다. 쌍벌제는 그래서 나왔다. 지금까지는 리베이트를 준 사람만 처벌했지만, 고시가 시행되면 받은 사람까지 처벌하겠다는 취지였다. 리베이트 비율도 도매상 1%, 소매상 3%로 제한했다. 각종 대여금과 5000원 이상의 홍보물품 지급도 차단했다.

“좋은 취지가 부작용 낳을 수도”

국세청의 이 같은 방안에 대형 도매상의 반발은 예상된 일이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산업협회, 외식업중앙회, 유흥음식점중앙회 등이 대놓고 반발한 것에 국세청도 당황한 듯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국세청과 단 한 차례의 의견 수렴 절차도 없었고, 행정예고가 나온 줄도 몰랐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각계 의견을 수렴했다”고 했다. 하지만 직접 이해당사자인 소형 주류 도매상 외에는 여론을 수렴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각종 할인 혜택, 홍보물품을 지원받은 자영업자 사이에서는 ‘각종 지원이 다 끊길 것’이라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또 ‘주류대출’도 이들을 자극했다. 도매상들은 받은 리베이트 중 일부를 술집과 음식점 등에 대출해준다. 정기적으로 술을 판매할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다. 은행 문턱은 높고, 제2 금융권은 부담스러운 영세 자영업자들이 주로 활용했다. 리베이트가 줄면 주류대출도 끊길 것이란 전망에 자영업자들이 반발했다. 국세청이 예상치 못한 소매영역에서 나온 반발이었다. 호소문과 건의문, 각종 문의가 빗발치자 국세청은 뒤늦게 긴급 간담회 등을 열고 수습에 나섰다.

정책이 미칠 영향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없었음을 국세청도 시인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산업계 파장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 더 의견을 수렴한 뒤 재추진하겠다”고 했다. 수십 년 된 관행을 하루아침에 바꾸겠다고 나선 것도, 국세청의 과도한 자신감도 일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20년 넘은 영업의 룰이 바뀌는데, 단계적 시행이나 시범 시행 등의 완충재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주류 가격 할인이 또 다른 리베이트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겠다고 밝힌 것도 기업의 가격 결정권을 무시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세청은 제도 시행을 유예하면서 언제까지 유예할지 밝히지 않았다. 주류업계에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내몰린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