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이달 중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사건에 대한 분쟁조정안을 낸다. 은행들이 키코 피해 기업에 피해액의 20~30%를 배상하라는 권고안을 내는 방안이 유력하다. 은행들이 키코를 판매할 때 상품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은행들은 금감원의 권고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권고안을 수용하면 150~200건의 유사 사례가 잇따를 수 있어서다. 최대 조(兆) 단위 배상 요구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금감원, 은행에 키코 피해액 30% 배상 권고할 듯
금감원, 조만간 키코 재조사 결론

3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르면 오는 9일, 늦으면 16일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키코 사태 재조사에 대한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키코는 고위험 외환파생상품이다. 기업들이 2007~2008년 환헤지를 위해 가입했다. 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하자 가입 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대법원은 2013년 “키코는 불공정 계약이 아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2017년 금융위원회의 민간 자문단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이 사건의 재조사를 권고했다. 금융위는 이를 받아들여 재판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이 금감원을 통해 조정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했다. 금융행정혁신위원장을 맡았던 윤석헌 금감원장이 지난해 5월 취임하면서 조정 절차에 속도가 붙었다.

이번 분쟁조정 대상은 일성하이스코와 남화통상, 원글로벌미디어, 재영솔루텍 등 4개 업체다. 피해금액은 총 1500억원에 달한다. 금감원은 이번 재조사 과정에서 불완전 판매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책임을 묻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금융당국 내부에선 피해 기업이 입은 손실의 20~30%를 은행에 배상시키는 분쟁조정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은행의 불완전 판매 책임이 큰 경우 배상비율이 50%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은행들이 부담할 배상액은 300억~45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은행들 “수용하기 힘들어”

은행들은 금감원의 결론을 수용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은행 내부에선 분쟁조정안을 거부해 피해 기업과 소송으로 이어져도 패소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 손해배상 소멸시효(손해 발생일로부터 10년)가 완성된 상태여서다.

은행들은 이번에 분쟁조정을 신청한 4개 기업 외에 분쟁조정이나 소송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기업이 150곳이나 된다는 점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피해금액은 최대 4000억원으로 추산된다. 키코와 유사한 상품으로까지 전선이 확대될 경우 피해 규모가 조 단위로 늘어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은행들이 금감원의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금감원으로선 강제할 방법이 없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키코 재조사 필요성을 언급해 피해 기업들을 대상으로 희망고문만 한 셈”이라며 “금감원 내부에서도 이 같은 고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키코(KIKO)

Knock-In·Knock-Out의 약자. 환율변동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환헤지 상품. 약정환율과 약정구간(상한-하한)을 정해놓고 구간 안에서 환율이 움직이면 계약자가 제한된 손익이나 손실만 입는 구조다. 환율이 하한(Knock-Out) 이하로 떨어지면 계약이 자동 취소된다. 상한(Knock-In) 이상으로 올라가면 계약한 회사는 약정금액의 2~3배를 환율시장에서 사서 약정환율에 은행에 매도해야 한다.

박신영/정지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