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시간을 잊는 완벽한 그 곳, 탁발승 발걸음처럼 고요한 루앙프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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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의 와일드 노마드 라이프 (5) 라오스 루앙프라방
![루앙프라방의 상징인 꽝시폭포. 에메랄드빛 계곡과 울창한 숲속에서 여유로운 휴식을 즐길 수 있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906/AA.19989982.1.jpg)
흉내만 내도 좋아, 탁발 의식
루앙프라방은 독실한 불교국인 라오스 안에서도 ‘불도’로 불리는 종교적인 지역이자 순례의 목적지다. 라오스 사람들은 왕궁 박물관에 있는 신성한 황금 불상 ‘프라방’을 알현하는 일을 생의 과업으로 여긴다. 이 불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도시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14세기, 크메르제국(지금의 캄보디아)의 공주와 결혼한 란쌍 왕국(최초의 라오스 독립국가. 현재의 라오스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 세워지기 전까지 라오스는 ‘란쌍’이었다.)의 파웅음 왕이 장인으로부터 이 선물을 받은 뒤 이곳은 씨앙통(황금의 도시)이라는 옛 이름 대신 ‘신성한 황금 불상의 도시’라는 뜻의 루앙프라방으로 불렸다.
![탁발승과 보시하는 사람들. 가장 루앙프라방 다운 장면이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906/AA.19989984.1.jpg)
![해질녘 메콩강의 아름다운 풍경](https://img.hankyung.com/photo/201906/AA.19989986.1.jpg)
일회성 체험에 불과했지만 탁발은 확실히 특별한 경험이다. 무례하게 플래시를 터뜨리거나 망원렌즈를 들이대고 잡담으로 소란을 만드는 관광객 틈에서 승려와 라오스 사람들은 오롯한 침묵으로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일과에 집중한다. 가난해도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는 행위보다 그게 더 감동적이었다.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온 이 고유한 문화가 시대, 사상의 변화에 관계없이 지속되고 있는 건 이 한결 같은 성실함과 집중 덕 아닐까? 이런 장면 앞에 있으면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고는 못 배긴다. 좋은 철학서 한 권을 읽는 일만큼이나 의미 있는 찰나였다.
공예의 도시를 탐험하는 법
![루앙프라방 씨사왕웡 거리. 전통 수공예품을 파는 상점이 많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906/AA.19989983.1.jpg)
영국 출신의 저널리스트 조안나와 라오스 출신 베오마니가 문을 연 ‘옥팝톡(OCK POP TOK)’은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큰 텍스타일 브랜드다. 이들은 라오스 전역에 거주하는 500여 명의 여성 장인과 함께 예술 작품 및 생활, 패션 소품을 만든다. 완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있는 쇼룸 외에 직조와 염색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운영한다. 반나절에서 한나절가량의 시간을 들이면 자연의 색을 내는 열매와 나무를 채취하는 과정부터 염색, 베틀 짜기 등을 거쳐 ‘세상에서 하나뿐인’ 자기 작품을 만들어 가져갈 수 있다. 라오스의 전통 음식과 다과를 즐길 수 있는 롯지 카페는 작업 후 시간을 보내기 좋은 장소. 간단한 채소와 고기, 국물 요리로 구성된 ‘직조공의 점심’ 세트로 허기를 채운 뒤 도도히 흐르는 메콩강을 바라보며 일몰을 즐기면 루앙프라방 공예가의 일상을 제법 비슷하게 경험할 수 있다.
숨은 ‘프랑스’를 찾아서
![옥팝톡 카페에서 맛볼 수 있는 가정식 밥상](https://img.hankyung.com/photo/201906/AA.19989988.1.jpg)
‘프랑스풍’이 진하게 섞인 라오스의 콜로니얼 문화는 건축물과 음식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라오스 최고의 크로아상집’으로 극찬받는 베이커리 ‘르 바네통(Le Banneton)’은 야시장의 ‘만사천낍 뷔페’와 함께 루앙프라방 여행자가 극찬하는 동네 맛집이다. 프랑스 사람이 운영하는 카페테리아답게 본토에 가까운 맛을 재현한다.
![루앙프라방은 세계적인 인디고, 목화 재배지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906/AA.19989987.1.jpg)
시간이 지워지는 순간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따로 있다. 시내에서 제일 큰 시장에서 문도, 셔터도 없는 미용실 앞을 지날 때의 일이다. 낡은 거울과 식탁 의자 몇 개, 유행하는 헤어 스타일로 추정되는 독특한 머리 모양을 한 사진 몇 장. 그 뒤에 덩그러니 놓인 침대 하나.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그 가구에 시선이 멈췄다. ‘미용실에 웬 침대?’ 호기심은 곧 해소됐다. 머리를 자른 여성이 침대로 가 누우니 미용사가 그 아래에 대야를 받치고 미리 받아놓은 물에 머리를 감겼다. 너무 흔해서 한번도 존재감을 인지하지 못한 ‘미용실 자동의자’ 정도의 문명이 이 도시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건가? 아니면 미용실 원장이 그걸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을 벌어들이지 못하는 걸까?
루앙프라방에 머무는 내내 “지금 2019년 맞나?” 같은 반문을 17번쯤 했다. 몸으로 느낀 이 도시의 시제는 “아빠 어렸을 땐 말이야”에 등장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유년기 그 자체였다. 학교에 있어야 마땅할 시간에 강가에서 발가벗고 뛰노는 아이들(가난해서 학교에 못 가는 아이가 많다), 신호등과 횡단보도, 주차 미터기, 고층 건물이 단 하나도 없는 번화가….
한 해 4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나라에서 가장 빛나는 유산을 지닌 고도는 생각보다 더 ‘옛날’ 도시 같았다. 눈으로 맞는 풍경의 시제를 말하는 게 아니다. 발전이 더뎌서, 으레 있어야 마땅한 것들-예를 들면 도시인의 안식처, 스타벅스와 맥도날드-이 정말로 없다. 이 ‘뒤처진 속도’ 덕에 매일 시간을 까맣게 잊었다. 일상과 서울이 버거울 때, 낯선 시제에 내 자신을 던지고 싶을 때 루앙프라방을 또 찾을 생각이다. 그 의지 앞에서 두 세 편의 비행기와 버스를 거치는 번거로운 여정, 흔한 편의점 하나 없는 불편한 깡촌의 환경은 별 문제가 안 된다.
루앙프라방=글·사진 류진 여행작가 flyryu@naver.com
여행 정보
꽝시폭포는 탁발 의식과 함께 루앙프라방의 상징으로 손색 없는 볼거리다. 시내에서 뚝뚝이나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미니밴을 타면 약 40~50분 안에 닿는다. 석회암 성분 덕에 청아한 옥빛 물색이 난다. 수영 가능 표지판이 있는 구역에선 물놀이도 할 수 있다. 라오스 최초의 식물원 ‘파 따 드께 보태니컬 가든’은 숲과 정원의 매력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장소다. 시내의 티켓 오피스에서 입장권을 구매하면 메콩강을 왕복하는 전용 보트를 타고 갈 수 있다. 오후 5시 안팎에 출발하는 마지막 배편을 타고 나가면 메콩강의 숨막히는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