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갓 넘긴 이 과장(31)은 최근 건강용품 구입에 부쩍 관심이 높아졌다. 언제부터인가 책상에 쌓인 건강용품만 네 개. 노트북 받침대, 손목 부담을 줄여주는 버티컬 마우스, 거북목 교정베개는 기본이다. 지난주엔 허리 통증을 줄여주는 ‘자세교정방석’을 5만원 주고 샀다. 이 과장은 지난 주말에는 ‘걸음걸이 교정신발’을 사려고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조그마한 노트북 화면을 보며 장시간 일하다 ‘목 디스크(경추 추간판 탈출증)’를 얻게 된 이 과장에게 건강용품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그는 “건강용품 모으는 데 ‘중독’된 것 같다”며 “몸이 건강해야 회사도 오래 다닐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과중한 업무에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한 김과장 이대리들의 건강 챙기기가 눈물겹다. 사무실에서 각종 건강용품으로 ‘무장’하는가 하면 고전적인 ‘걷고 달리기’를 꾸준히 실천하기도 한다. ‘내 몸 지키기’에 나선 김과장 이대리의 사연을 들어봤다.
[김과장&이대리] "내 몸 내가 지킨다"…눈물겨운 건강챙기기
“목·어깨·허리 통증 중 하나는 기본”

하루 8시간 이상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직장인에게 목과 어깨통증은 고질병이다. 김모 회계사는 외부 업체 출장을 다닐 때마다 노트북 받침대, 블루투스 키보드, 버티컬 마우스를 모두 챙긴다. 노트북 화면이 눈높이만큼 높아지도록 받침대를 최대한 세우고 블루투스 키보드는 무릎 위에 얹는다. 그 상태에서 키보드를 치면 어깨를 들어올리지 않고 바른 자세가 유지된다. 그는 “이것저것 들고 다녀서 가방이 무거워도 머리까지 통증이 올라와 괴로운 것보다는 낫다”고 설명했다.

건강용품으로 ‘버티는’ 직장인도 있다. 정보기술(IT) 업체에 다니는 정모 사원(30)은 요즘 퇴근 후 다리가 퉁퉁 붓는 게 고민이다.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 있어서인지 다리가 자주 붓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여자 아이돌이 평소 신는다는 지압 슬리퍼에 꽂혀 구매했다. 처음엔 울퉁불퉁한 지압을 밟을 때마다 발바닥에 통증이 올라와 그 슬리퍼를 신고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었다. 그는 “1주일 정도 신으니 조금 적응이 됐다”며 “다리 붓기도 조금씩 빠지는 것 같아 앞으로 더 참고 신어보려 한다”고 했다.

비타민, 홍삼 등 ‘약’에 의존하는 김과장 이대리도 많다.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모 대리(32)는 하루 여덟 가지 약을 챙겨 먹는다. 야간 근무가 많은 탓에 피로가 쉽게 가시지 않아 하나둘씩 먹기 시작한 게 이 정도까지 왔다. 그는 최근 약국에서 쓰는 약봉투와 밀봉 기계도 샀다. 여기에 여덟 가지 약을 봉투에 담아 한 달치를 미리 쟁여 놓는다. 박 대리는 “매일 약봉투를 달고 다니니까 주변에서 ‘약쟁이’란 소리까지 듣게 됐다”며 “약봉투를 챙기지 않으면 이제 불안할 정도”라고 했다.

틈틈이 걸으면 커피가 공짜

지난해 말 초기 허리 디스크(요추 추간판 탈출증) 판정을 받은 한 중견기업의 김모 대리는 ‘AIA 바이탈리티 XT 건강걷기’ 앱(응용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 ‘하루 1만 보 걷기’를 한다. 회사 출근 및 퇴근 시 한 정거장 먼저 내려 걷고, 사내에서도 다른 층을 갈 때 대부분 계단을 이용한다. 하루 1만 보까지는 아니더라도 7500보만 넘으면 바이탈리티 포인트 50포인트를 받는다. 일정 포인트를 넘으면 보험료를 할인받거나 파리바게뜨 커피, 휴대폰 요금할인 쿠폰 등을 받을 수 있다. 김 대리는 “건강을 챙기면서 커피도 공짜로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국내 한 건설회사에 다니는 정모 사원(29)은 서울시 공유 자전거 ‘따릉이’ 이용권을 구매했다. 입사 후 잦은 회식에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면서 1년 새 몸무게가 10㎏이나 불었다. 하루 1시간 기준 180일 이용권 금액은 1만5000원. 헬스장 이용료하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싸다. 15㎞ 남짓 퇴근 거리를 자전거로 가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지하철 비용을 아끼는 건 일석이조다. 그는 “야근 후 운동할 시간이 없어 무조건 따릉이를 이용해 퇴근하기로 했다”며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한강 다리를 건너는 것도 또 다른 재미”라고 했다.

나를 위한 사무실 환경을 조성하는 데도 김과장 이대리는 적극적이다. 전남 나주의 한 공기업에 다니는 박모 대리(35)는 지난달부터 사무실 책상 위에 USB 소형 가습기를 틀어놓는다. 선천적으로 기관지가 안 좋은 그에게 가습기는 필수품이다. 집에는 이미 대형 가습기를 갖춰놨다. 지난달 1만원을 들여 사무실용 소형 가습기를 장만했다. 박 대리는 “현장에 다녀온 뒤 사무실에 있으면 마른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며 “작은 가습기라도 틀어서 그나마 상태가 나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가 건강용품 구매비 지원도

건강용품 구매 비용을 지원해주는 회사도 있다. 한 중소 IT 회사는 지난달 초 노트북 거치대와 블루투스 키보드 등을 사도록 직원들에게 특별지원금을 10만원씩 지급했다. 데스크톱보다 노트북을 사용하는 업무 특성 탓에 목과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직원이 급격히 늘면서다. 선호하는 건강용품이 직원마다 제각각이어서 아예 현금으로 지원했다. 이 회사 마케팅팀에 있는 김모 매니저(35)는 팀원들에게 줄 돈을 모아 버티컬 마우스와 블루투스 키보드를 단체로 샀다. 그는 “직원 건강용품 구매비를 회사가 지원한다고 해 이번 기회에 단체로 장만했다”고 말했다.

국내 한 중견 건설사는 5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안마의자 두 대를 휴게실 한쪽에 마련했다. “쉴 때 안마 받으면서 제대로 쉬자”는 이 회사 사장의 방침 덕분이다. 최근에는 안마의자 양 옆으로 1m 높이 칸막이를 추가로 설치했다. 칸막이 덕에 안마의자는 안마실 겸 수면실로 탈바꿈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휴식을 취하려는 직원들로 북적인다. 이 회사에 다니는 윤모 대리(32)는 “1주일에 한두 번은 안마의자에 앉아 피로를 푼다”며 “안마 기능보다도 쪽잠을 잘 수 있는 수면실이 생긴 게 좋다”고 말했다.

통증을 덜기 위해 여러 건강용품을 구매해도 증세가 낫지 않는 사례도 있다. 업무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많아서다. 전자회사에 다니는 임모 과장(33)은 최근 손목터널증후군이 악화됐다. 10만원이 넘는 버티컬 마우스를 구입한 뒤 처음에는 증상이 호전되는 듯했지만 1주일이 지나자 다시 손목에 익숙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일 자체가 많고 업무가 바뀌지 않으니까 버티컬 마우스를 써도 손목터널증후군을 피하기가 힘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