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억 소재' 무기화한 日…韓, 170兆 반도체·디스플레이 수출 타격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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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아킬레스건 때린 日
기업들 연일 대책 회의
삼성·하이닉스 "외교 얽혀 곤혹"
기업들 연일 대책 회의
삼성·하이닉스 "외교 얽혀 곤혹"
일본 정부가 1일 반도체, 디스플레이 일부 소재의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하자 국내 관련업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5000억원도 안되는 일본산 소재 수입 규제 때문에 170조원이 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해외 수출이 큰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업체 경영진은 연일 대책 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은 없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일각에선 세계 반도체, 디스플레이 시장에 미칠 ‘후폭풍’을 고려할 때 일본 정부가 실제 수출 규제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사태가 장기화되지 않는다면 반도체 불황으로 쌓인 악성 재고를 떨어낼 수 있어 한국 기업에 ‘위기’보다는 ‘기회’ 요인이 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선거를 앞둔 일본 정부의 ‘협박성 카드’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장비와 소재의 국산화 비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고 입을 모았다.
꼬리가 몸통 흔드나
일본 정부가 이날 수출 규제를 강화하기로 한 3개 품목은 △리지스트(감광액)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이다. 감광액은 웨이퍼 위에 회로를 인쇄하는 노광 공정에 사용된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반도체 회로의 패턴을 형성하는 식각 및 세정 공정에 활용되는 핵심 소재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불소 처리를 통해 열 안정성과 강도 등의 특성을 강화한 폴리이미드(PI) 필름이다. 스마트폰과 TV용 LCD(액정표시장치), 휴대폰용 인쇄회로기판(PCB)을 생산할 때 광범위하게 쓰인다.
일본 정부가 이들 3개 소재를 ‘콕’ 집어 수출 규제를 강화하려는 이유는 한국 기업의 의존도가 높아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지난해 수입한 감광액 중 일본산 비중은 93.2%에 달한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일본산 비중은 84.5%, 고순도 불화수소 비중도 41.9%다.
수출 규제에 따른 충격은 막대할 것이라는 평가다. 일본산 감광액과 고순도불화수소를 수입하지 못하면 D램, 낸드플래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국내 주요 반도체 제품 생산이 큰 지장을 받는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수입이 막히면 LCD와 OLED 패널 생산이 차질을 빚는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수출 물량이 1267억달러(약 147조원)와 249억달러(약 29조원)로 각각 국내 수출 1, 4위에 오른 제품이다. 국내 기업들이 지난해 일본에서 수입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물량은 △감광액 2억9889만달러 △고순도 불화수소 6685만달러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1972만달러 등 3억8546만달러(약 4500억원)어치다. 일본 정부로선 자국 기업들은 최대 4500억원의 손실을 보면서 176조원에 달하는 한국 기업들의 수출 시장을 뒤흔들 카드를 손에 쥔 셈이다. 다만 업계에선 당초 우려와 달리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의 피해는 크지 않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반도체 생태계 업그레이드할 기회”
국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업계는 지난해 말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의 경제 보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책을 검토해 왔다. 반도체업계 고위 관계자는 “독성으로 인한 위험, 변질 가능성 등으로 석 달치 이상 재고를 보유하기가 쉽지 않다”며 “개별 기업으로선 뾰족한 해법이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가 ‘단순 위협용’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세계 반도체, 휴대폰, TV 시장에 미치는 후폭풍을 감안할 때 일본 정부가 실제 수출 규제 조치를 실행에 옮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생산을 멈추면 세계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폭등하게 된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단기적인 상황으로 끝날 경우 국내 업계엔 득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업계에 쌓인 과잉 재고를 소진할 수 있어서다. 장기적으로는 이번 사태가 국내 반도체, 디스플레이 생태계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 기업의 위협을 현실로 느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국내 장비 및 소재 업체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려 국산화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좌동욱/김보형 기자 leftking@hankyung.com
일본 정부가 이날 수출 규제를 강화하기로 한 3개 품목은 △리지스트(감광액)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이다. 감광액은 웨이퍼 위에 회로를 인쇄하는 노광 공정에 사용된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반도체 회로의 패턴을 형성하는 식각 및 세정 공정에 활용되는 핵심 소재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불소 처리를 통해 열 안정성과 강도 등의 특성을 강화한 폴리이미드(PI) 필름이다. 스마트폰과 TV용 LCD(액정표시장치), 휴대폰용 인쇄회로기판(PCB)을 생산할 때 광범위하게 쓰인다.
일본 정부가 이들 3개 소재를 ‘콕’ 집어 수출 규제를 강화하려는 이유는 한국 기업의 의존도가 높아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지난해 수입한 감광액 중 일본산 비중은 93.2%에 달한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일본산 비중은 84.5%, 고순도 불화수소 비중도 41.9%다.
수출 규제에 따른 충격은 막대할 것이라는 평가다. 일본산 감광액과 고순도불화수소를 수입하지 못하면 D램, 낸드플래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국내 주요 반도체 제품 생산이 큰 지장을 받는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수입이 막히면 LCD와 OLED 패널 생산이 차질을 빚는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수출 물량이 1267억달러(약 147조원)와 249억달러(약 29조원)로 각각 국내 수출 1, 4위에 오른 제품이다. 국내 기업들이 지난해 일본에서 수입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물량은 △감광액 2억9889만달러 △고순도 불화수소 6685만달러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1972만달러 등 3억8546만달러(약 4500억원)어치다. 일본 정부로선 자국 기업들은 최대 4500억원의 손실을 보면서 176조원에 달하는 한국 기업들의 수출 시장을 뒤흔들 카드를 손에 쥔 셈이다. 다만 업계에선 당초 우려와 달리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의 피해는 크지 않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반도체 생태계 업그레이드할 기회”
국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업계는 지난해 말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의 경제 보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책을 검토해 왔다. 반도체업계 고위 관계자는 “독성으로 인한 위험, 변질 가능성 등으로 석 달치 이상 재고를 보유하기가 쉽지 않다”며 “개별 기업으로선 뾰족한 해법이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가 ‘단순 위협용’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세계 반도체, 휴대폰, TV 시장에 미치는 후폭풍을 감안할 때 일본 정부가 실제 수출 규제 조치를 실행에 옮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생산을 멈추면 세계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폭등하게 된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단기적인 상황으로 끝날 경우 국내 업계엔 득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업계에 쌓인 과잉 재고를 소진할 수 있어서다. 장기적으로는 이번 사태가 국내 반도체, 디스플레이 생태계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 기업의 위협을 현실로 느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국내 장비 및 소재 업체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려 국산화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좌동욱/김보형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