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中희토류' 대처 방식 원용" vs "외교정치적 해법으로 풀어야"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방침을 밝힌 가운데 소송이냐 대화냐를 놓고 갈림길에 들어선 형국이다.

아직 일본의 수출규제가 아직 정식으로 시작되지 않았고 한국도 본격적으로 제소 절차를 밟는 것은 아니지만 현 단계에서 양 갈래 해법이 대두되고 있다.

2일 재계와 정부당국 등에 따르면 정부에서 공언한 대로 WTO 제소로 갈 경우 일본이 과거 중국의 희토류 수출제한에 대처한 방식을 원용해 외교적 압박, 수입 대체선 발굴, 대체 국산품 개발 등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이 제기된다.

앞서 중국이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 영유권 문제로 일본 등과 갈등을 빚을 당시인 2012년 일본은 미국, 유럽연합(EU)과 연대해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를 WTO에 공동 제소한 바 있다.
일본 반도체소재 수출규제 해법 놓고 '반격 vs 대화' 갈림길
미국과 동맹들은 2014년 승소 판정을 받았고 중국은 규제 조치를 풀었다.

통상 당국자는 2일 "WTO에서 중국이 패했고 희토류 수출 중국 업체들도 피해를 상당히 봤다"며 "일본은 당시 희토류 수입 대체선을 발굴하고 대체제품 개발에 나섰다"고 전했다.

정부도 이러한 방식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는 WTO 회원국으로서 일본이 이번 조치에 대해 스스로 국제법상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직 명확한 근거를 대지 못한 채 '양국간 신뢰관계 훼손'이란 두루뭉술한 해명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국제법과 국내법을 동원해 일본에 대응하겠다고 하지만 아직 국내법을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건지는 명확치 않다.

다만 정부 당국자는 나름의 반격 카드가 있다면서 "괜한 엄포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또 1일 일본의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방침이 전격 발표된 후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그간 업계와 일본의 예상 가능한 (보복)조치에 대비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일본산 제품을 대체할 수 있도록 기술개발을 통한 국산화를 추진해왔다고 했으나 사실상 가까운 시일 안에 성과를 내기는 힘든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일본은 소재 100년 제국이라고 하듯 워낙 다른 나라와 기술격차가 크다"며 "우리도 10년 전부터 장비·소재·부품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를 해서 일부 성과도 봤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라고 말했다.
일본 반도체소재 수출규제 해법 놓고 '반격 vs 대화' 갈림길
현 단계에서 WTO 제소 등 강대강 대치가 능사만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본의 중국 희토류 소송처럼 WTO로 가면 이길 여지는 있다고 본다"며 "문제는 시간싸움인데 WTO 소송에서 이기기까지 3, 4년은 족히 걸릴 것이고 그동안 우리 산업계는 막심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WTO에 이 문제를 제소할 경우 사전에 한국이 교역상대국으로서 최소한의 할 의무를 다했으며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국 산업계가 당한 실제 피해를 입었음을 입증하는데 복잡한 절차와 함께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기술환경이 급변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과연 한국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기업이 이 정도 기간을 감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안 교수는 강조했다.

특히 최근 WTO 항소심에서 한국이 일본의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 수입제한 조치에서 극적으로 역전승을 거두긴 했지만, WTO 자체가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일방적 보호주의 행태 때문에 사실상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안 교수는 "일본이 곧바로 수출제한을 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고 수출 기준을 바꾸겠다고 한 것은 사실상 우리에게 경고하고 시간을 준 셈"이라면서 "미중 무역분쟁에 한국과 일본이 공동 대응해도 모자랄 판에 외교 문제로 양국 산업계가 피해를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외교정치적으로 푸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문병기 수석연구원은 "WTO 소송을 가면 힘겨루기식 장기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데 한일은 서로 정보기술(IT) 공급망으로 얽혀있는 만큼 함께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양국간 협의를 통해 이해를 넓히는 방식으로 푸는 게 가장 빠른 해법"이라고 진단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