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경매를 통해 일본인 손에 넘어가 일본으로 유출됐던 장명등(長明燈), 장군석(사진) 등 옛 석조유물 8점이 고국에 돌아왔다. 서울 성북동 우리옛돌박물관(이사장 천신일)은 2일 환수 기념식을 열고 일본인 오자와 데루유키(尾澤輝行) 부부에게 기증받은 장군석, 장명등, 비석받침, 수병(水甁) 각 두 점을 공개했다.

이들 유물은 조선과 만주를 오가며 사업을 했던 오자와 씨의 외조부 요시이에 게이조(佶家敬造)가 1927년 경매에서 낙찰받은 것이다. 요시이에는 당시 도부철도 사장이자 고미술 애호가로 유명했던 네즈 가이치로와 치열하게 경합한 끝에 이 유물들을 낙찰받아 한·일 양국을 떠들썩하게 했다고 한다.

일본으로 건너간 석물들은 게이오대 근처에 있던 요시이에의 정원을 거쳐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 에노시마의 별장 정원으로 옮겨졌다. 요시이에의 외동딸이 낳은 막내아들 오자와 씨는 이 별장 정원을 개발하면서 석물들을 한국에 돌려보내기로 결심했다. 지인인 장선경 제이넷컴 부사장으로부터 우리옛돌박물관을 소개받은 오자와 씨는 수차례 답사 끝에 최적의 장소라고 판단해 천신일 우리옛돌박물관재단 이사장에게 기증 의사를 밝혔고, 마침내 지난달 14일 유물들이 박물관에 도착했다. 천 이사장은 2001년에도 일본으로 유출된 석조유물 약 70점을 찾아왔다.

이번에 돌아온 장군석은 무덤 앞에 세우는 조각상으로, 무석인(武石人)이라고도 한다. 근엄하고 기운이 넘치는 표정, 갑옷 어깨에 새긴 귀면문(鬼面文)이 인상적이다. 장명등 두 점은 무덤이나 절 앞에 세우는 등으로, 지붕 형태가 다르다. 사모지붕 장명등은 추녀마루를 도톰하게 표현했고, 경사가 완만한데 처마 끝이 살짝 들려 있어 우아한 느낌을 준다. 팔작지붕 장명등은 사면에 정사각형 화창(火窓)을 뚫었고 장식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