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고서화 등 쏟아져
일부 애호가들 매입 나서
K옥션 낙찰률 80% 돌파
중국 고(古)미술품 가격이 파죽지세로 치솟는 동안 한국 골동품 가격은 국제 미술계의 시선이 민망할 정도로 맥을 못 추고 있다. 1996년 10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백자철화운룡문호’가 841만달러로 당시 환율 약 70억원에 팔린 것이 최고가다.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국내 고미술 시장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최근 고서화와 도자기 등 고미술품이 경매시장에서 잇달아 고가에 낙찰되고, 국내외 전시회와 세미나가 이어지고 있다. 고미술품 가격이 1997년 외환위기 이전 수준인 데다 저가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수익성 기대도 커지고 있다. K옥션 고미술 낙찰률 80% 넘어
올 들어 고미술품 경매 낙찰률이 치솟고 있다. 서울옥션은 지난달 26일 경매에서 고미술품 80점 중 59점을 팔아 낙찰총액 59억원, 낙찰률 74%를 기록했다. 지난해 평균(69%)보다 5%포인트 높다. K옥션도 지난 5월 봄철 경매에서 고미술품 낙찰률이 81.9%까지 치솟았다. 고서화와 도자기, 민속품 등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신기록도 쏟아지고 있다.
조선시대 백자대호(白磁大壺)는 지난달 26일 서울옥션 경매에서 국내 도자기 거래 사상 최고가인 31억원에 낙찰됐다. 국내 경매회사가 거래한 고미술품 중 최근 3년간 30억원 이상에 팔린 작품이 한 점도 없는 것을 고려하면 양질의 고미술품이 시장에서 팔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1~2년 사이 억대 낙찰 작품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6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는 백자대호가 25억원에 새 주인을 찾아갔다. 조선 숙종 때 제작한 보물 제1239호인 ‘감로탱화’는 12억5000만원, 추사 김정희의 글씨 ‘동파산곡나한송(東波山谷羅漢頌)’은 1억원에 팔렸다. 작가 미상의 구윤명 초상화(3억6000만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3억6000만원),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수쇄탕주인’(愁殺蕩舟人·1억원), 기산 김준근의 풍속도첩(2억7000만원), 조선 백자호(1억4000만원) 등도 억대 낙찰가 대열에 합류했다.
고미술 전시회 풍성…해외 세미나 눈길
고미술품 시장에 온기가 돌자 미술관과 화랑들이 기획전을 열거나 준비 중이다. 삼성미술관 리움은 홍라희 관장 퇴임 이후 꾸준히 고미술 소장품 중심의 상설전을 열고 있고, 다보성갤러리는 고미술품 1000여 점을 모아 ‘한국의 미 특별전’이란 타이틀로 고미술을 재조명하고 있다. 포항 포스코갤러리는 ‘조선 화인열전’이란 제목으로 정선, 김정희, 단원 김홍도, 표암 강세황 등의 그림 30여 점을 걸었다. 호림박물관은 신사 분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10년의 기록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 특별전을 10월까지 연다. 학고재갤러리는 오는 26일 조선시대 유명 인사들의 간찰(편지)을 모은 전시회를 개막한다.
해외에서의 한국 고미술 조명도 활발하다. 중국 베이징미술관은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과의 대화’ 전을 열어 높은 호응을 얻었다. 한국 고미술을 주제로 한 해외 첫 심포지엄도 열렸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지난달 26~27일 스위스 취리히대에서 한국 고미술 작품 전시와 연구 방법론을 소개했다.
해외 유통 규제 풀어야 활성화
고미술의 재조명 열기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가격 추세는 김환기 그림값(최고가 85억원)보다 여전히 낮다. 문화재는 해외 유통이 금지된 데다 전시 등을 위해 국외로 반출할 때도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 국제적으로 알려질 기회가 적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문화재보호법 제39조는 전시 등을 위해 제작·형성된 지 50년 이상 지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정문화재를 해외로 내보내면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제 유통시장에서 한국 고미술품이 ‘왕따’가 될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정부가 지난달 26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청회를 열어 문화재 국외 반출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김종춘 다보성갤러리 회장은 “국보·보물급의 해외 유출은 규제해야겠지만 그보다 수준이 낮은 고미술품까지 함께 규제하고 있어 유통시장이 중국이나 일본처럼 활력을 찾는 데 한계가 있다”며 “규제를 어느 정도 풀어줘야 시장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