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의 경제산책] "일본의 2차 타깃은 반도체 장비"…'한방' 없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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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한국을 상대로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이 알려진 건 지난 일요일이었습니다. 자국 경제지인 산케이 신문 보도를 통해서였지요. 처음 이 기사를 접했을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한일 관계가 역대 최악이란 평가가 나오지만, 실제 수출 규제에 나서기엔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이지요.
정부 부처 여러 곳에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냐”고 물었으나 제대로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일본에서 어떠한 사전 통보도 듣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산케이 보도 하루 뒤인 1일 ‘무역 전쟁’을 공식 발표했고 바로 4일 개시합니다. 발표와 거의 동시에 실행에 착수하는 겁니다. 단순 ‘엄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일본 정부가 ‘1차’ 수출 규제에 나서는 품목은 우리 기업들의 급소격입니다. 거의 전적으로 일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들이기 때문이죠. 이참에 국산화하자는 얘기가 나오지만 절대 1~2년만에 개발할 수 없습니다.
반도체는 우리 산업의 대들보입니다. 국가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요. 디스플레이 역시 주력 수출 품목입니다. 일본산 소재가 없으면 반도체 수출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작년 대비 60%가량 떨어진 D램 단가 때문에 고전하고 있는데, 일본의 이번 수출 규제는 치명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위안부 피해자 합의 문제 등 현 정부가 시작한 ‘정치적 갈등 이슈’에 대한 피해를 애꿎은 기업과 국민들이 보게 된 셈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부처가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상대는 일본의 개별 ‘부처’가 아니라 아베 신조 총리 등 최고위급이기 때문이죠.
산업·통상을 담당해 온 정부 관료는 일본의 이번 조치가 일회성이 아닐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한국 정치’에 대한 일본 지도자들의 불만이 매우 크다는 것이죠.
일본의 다음 타깃으로는 ‘반도체 장비’를 꼽았습니다. 반도체 장비는 우리 기업들의 또 다른 급소입니다. 미국 독일 등 대안 생산국이 있지만 일본이 본격적인 수출 규제에 나설 경우 국내 최대 산업이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일각에선 반도체 소재보다 장비 수출 금지가 더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일본의 세 번째 수출제한 품목으로는 정밀기계를 꼽았습니다. 일본은 고도의 제조업 강국입니다. 우리보다 제조업 역사가 두 배 이상 깁니다. 정밀가공 기계의 수출을 제한하면, 우리 뿌리산업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반격할 카드가 별로 없다는 겁니다. 일본이 수출 규제 카드를 꺼내들었을 때도 우왕좌왕하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WTO에 제소해도 결론을 내기까지 2~3년 걸리는데다 우리한테 반드시 유리한 것만도 아닙니다. 여당과 정부가 반도체 등 핵심 소재 및 장비 개발에 매년 1조원을 집중 투자한다고 밝혔지만 사후약방문일 뿐입니다.
우리도 맞대응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습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따져보면 마땅한 대응 카드가 없습니다. 우리가 일본에서 수입하는 건 핵심 소재·장비 등 대체하기 어려운 품목들인데, 우리가 일본에 수출하는 건 소비재나 농수산물 위주이죠.
도요타자동차나 유니클로 불매 운동을 하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만 그닥 효과를 볼 것 같지 않습니다. 도요타만 해도 연간 1000만대를 판매하는데, 국내에서 파는 건 1만~2만대 수준입니다. ‘아베노믹스’에 힘입은 경제 활황 덕분에 도요타는 작년에 최초로 매출 30조엔을 돌파하기도 했지요. 본사 입장에선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불매 운동에 나서도 ‘핵심 사안’으로 판단하지 않을 겁니다. 도요타나 유니클로에 고용된 국내 근로자들만 힘들어 하겠지요.
일본으로 가는 여행 수요를 제한하자는 얘기도 나옵니다. 일본 여행을 떠나는 한국인은 한해 750만명에 달하지요. 한국에 오는 일본인 대비 3배 정도 많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먼저 ‘한국인 비자 제한’을 거론할 정도여서 ‘무기’가 되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또 정부가 주도적으로 ‘여행 제한’ 조치를 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는 ‘중국’이 아니니까요.
이번 갈등은 정치 문제에서 비화됐습니다. 단초를 제공한 청와대와 외교부가 적극 나서 풀어야 합니다. 경제부처인 산업부에 떠넘길 일이 아닙니다. 양국 국민들이 ‘감정 싸움’에 몰입하고 기업들이 망가질 때까지 ‘강 건너 불구경’해선 안됩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정부 부처 여러 곳에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냐”고 물었으나 제대로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일본에서 어떠한 사전 통보도 듣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산케이 보도 하루 뒤인 1일 ‘무역 전쟁’을 공식 발표했고 바로 4일 개시합니다. 발표와 거의 동시에 실행에 착수하는 겁니다. 단순 ‘엄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일본 정부가 ‘1차’ 수출 규제에 나서는 품목은 우리 기업들의 급소격입니다. 거의 전적으로 일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들이기 때문이죠. 이참에 국산화하자는 얘기가 나오지만 절대 1~2년만에 개발할 수 없습니다.
반도체는 우리 산업의 대들보입니다. 국가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요. 디스플레이 역시 주력 수출 품목입니다. 일본산 소재가 없으면 반도체 수출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작년 대비 60%가량 떨어진 D램 단가 때문에 고전하고 있는데, 일본의 이번 수출 규제는 치명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위안부 피해자 합의 문제 등 현 정부가 시작한 ‘정치적 갈등 이슈’에 대한 피해를 애꿎은 기업과 국민들이 보게 된 셈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경제부처가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상대는 일본의 개별 ‘부처’가 아니라 아베 신조 총리 등 최고위급이기 때문이죠.
산업·통상을 담당해 온 정부 관료는 일본의 이번 조치가 일회성이 아닐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한국 정치’에 대한 일본 지도자들의 불만이 매우 크다는 것이죠.
일본의 다음 타깃으로는 ‘반도체 장비’를 꼽았습니다. 반도체 장비는 우리 기업들의 또 다른 급소입니다. 미국 독일 등 대안 생산국이 있지만 일본이 본격적인 수출 규제에 나설 경우 국내 최대 산업이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일각에선 반도체 소재보다 장비 수출 금지가 더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일본의 세 번째 수출제한 품목으로는 정밀기계를 꼽았습니다. 일본은 고도의 제조업 강국입니다. 우리보다 제조업 역사가 두 배 이상 깁니다. 정밀가공 기계의 수출을 제한하면, 우리 뿌리산업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반격할 카드가 별로 없다는 겁니다. 일본이 수출 규제 카드를 꺼내들었을 때도 우왕좌왕하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WTO에 제소해도 결론을 내기까지 2~3년 걸리는데다 우리한테 반드시 유리한 것만도 아닙니다. 여당과 정부가 반도체 등 핵심 소재 및 장비 개발에 매년 1조원을 집중 투자한다고 밝혔지만 사후약방문일 뿐입니다.
우리도 맞대응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습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따져보면 마땅한 대응 카드가 없습니다. 우리가 일본에서 수입하는 건 핵심 소재·장비 등 대체하기 어려운 품목들인데, 우리가 일본에 수출하는 건 소비재나 농수산물 위주이죠.
도요타자동차나 유니클로 불매 운동을 하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만 그닥 효과를 볼 것 같지 않습니다. 도요타만 해도 연간 1000만대를 판매하는데, 국내에서 파는 건 1만~2만대 수준입니다. ‘아베노믹스’에 힘입은 경제 활황 덕분에 도요타는 작년에 최초로 매출 30조엔을 돌파하기도 했지요. 본사 입장에선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불매 운동에 나서도 ‘핵심 사안’으로 판단하지 않을 겁니다. 도요타나 유니클로에 고용된 국내 근로자들만 힘들어 하겠지요.
일본으로 가는 여행 수요를 제한하자는 얘기도 나옵니다. 일본 여행을 떠나는 한국인은 한해 750만명에 달하지요. 한국에 오는 일본인 대비 3배 정도 많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먼저 ‘한국인 비자 제한’을 거론할 정도여서 ‘무기’가 되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또 정부가 주도적으로 ‘여행 제한’ 조치를 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는 ‘중국’이 아니니까요.
이번 갈등은 정치 문제에서 비화됐습니다. 단초를 제공한 청와대와 외교부가 적극 나서 풀어야 합니다. 경제부처인 산업부에 떠넘길 일이 아닙니다. 양국 국민들이 ‘감정 싸움’에 몰입하고 기업들이 망가질 때까지 ‘강 건너 불구경’해선 안됩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