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화재는 가격경쟁력을 강조한 신상품을 내놓을 때마다 ‘착한 가격’이라는 브랜드를 붙이고 있다. 이들 상품의 공통점은 무해지환급형 또는 저해지환급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보험을 중간에 깨면 돌려받는 돈(해지환급금)이 없거나 적은 대신 보험료를 깎아주는 조건이다. 지난 5월 출시한 ‘착한가격 더플러스 통합보험’은 40세 남성이 일반형에 가입하면 월 5만9000원을 내지만, 무해지환급형으로 들면 4만8000원으로 보험료가 19% 내려간다.

이런 ‘무해지·저해지 보험’이 보험업계의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지갑이 얇아진 중장년층은 물론 보험에 별 관심이 없는 20~30대까지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해지 땐 손해지만 보험료 저렴…'무해지 보험' 뜬다
판매 실적 해마다 두 배씩 뛰어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무해지·저해지 보험 신규 계약은 2016년 32만 건, 2017년 85만 건, 2018년 176만 건으로 늘었다. 올 들어선 1분기에만 108만 건이 팔려 지난해 1년치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기록했다. 종신보험, 치매보험, 암보험, 어린이보험 등 보장성보험을 중심으로 100종 안팎이 판매되고 있다.

무해지·저해지 보험은 보험료를 내는 기간(납입기간) 이후에는 해지환급금이 일반형과 같지만, 납입 도중 해지하면 환급금이 없거나 크게 깎인다. 통상 납입기간이 20년 이상인 보험 상품에 많이 활용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시장이 포화상태이고 경기도 좋지 않아 가입자를 유치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가격 부담을 낮춘 무해지·저해지 보험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무해지·저해지 보험은 정부 규제 때문에 나오지 못하다가 2015년 7월 국내에 처음 등장했다. 첫 타자인 오렌지라이프(당시 ING생명)의 ‘용감한 오렌지 종신보험’은 환급금이 30~50% 적은 저해지형을 앞세워 20~30대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이후 환급금이 전혀 없는 무해지형이 등장했고 국내 모든 보험사로 확대됐다. 이가원 오렌지라이프 부장은 “종신보험 부문에서 무해지·저해지 상품 수는 손에 꼽을 정도지만 판매 비중은 압도적으로 높다”며 “보험료 부담이 작아 현장에서 소비자 반응이 확실히 좋다”고 설명했다.

“중간에 해지할 거면 들지 말라”

소비자 입장에서는 중도 해지하지 않고 끝까지 유지할 자신이 있다면 무해지·저해지 보험을 선택하는 것이 무조건 이득이다. 박상욱 금융감독원 생명보험검사국장은 “계약을 만기까지 유지한다면 소비자에게 유리하지만, 납입 완료 이전에 해지한다면 손해가 크다”고 설명했다. 상품안내장에 일반 보험 상품과 해지환급금을 비교한 자료가 들어있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보고 가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험사들이 이런 상품을 쏟아내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쉽게 들었다가 금방 해지하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생명보험 상품은 가입 첫해에 약 15%, 2년차에 10~15%가 해지된다.

보험연구원은 “무해지·저해지 상품은 보험사 예상보다 해지가 적으면 손실이 쌓이는 구조”라며 “캐나다 등에선 이 상품으로 업체들의 수익성이 악화된 사례도 있는 만큼 국내 보험사들이 상품 설계 과정에서 위험 관리에 신경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무해지·저해지 보험 판매가 급증하면서 향후 해지환급금과 관련한 금융 민원이 급증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불완전판매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환급금에 관한 안내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