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脈] 민간혁신 길잡이 되는 공공조달이어야
2002년 일론 머스크가 재활용 로켓이라는 새로운 위성발사 모델을 꿈꾸면서 스페이스X라는 벤처회사를 세웠지만, 아니나 다를까 혁신적 모델이란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2008년까지 거듭된 실패에 돈이 바닥났다. 그해 말 결국은 파산에 직면했다. 그때 수호천사가 나타났다. 미국의 공공기관인 항공우주국(NASA)이 향후 열두 차례의 위성발사를 위탁하는 16억달러 규모의 공공발주 계약을 내줬던 것이다. 그 덕에 스페이스X는 기사회생할 수 있었고, 거듭된 시행착오 끝에 2015년 처음으로 사용후 엔진을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긴 이야기를 요약하면 정부가 민간의 혁신적 기술과 제품을 조달했고, 결과적으로 공공기관인 NASA는 기존보다 훨씬 싸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공공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부수적인 효과로 독창적인 개념설계를 가진 혁신적인 기업도 탄생했는데, 현재 스페이스X는 7000명이 넘는 직원 규모에 기업가치는 30조원을 훨씬 웃돈다.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라도 단 한 번에 빅히트를 치는 경우는 없다. 실제 사례에 적용하고, 개선해가면서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 위 사례에서 보듯 공공조달시장은 이 길고 지루한 혁신과정에서 첫 번째 ‘스프링보드’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혁신기업에 생명수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의 공공조달시장은 연간 123조원 이상 규모다. 정부재정의 29%, 국내총생산(GDP)의 7%를 넘는 막대한 규모다. 환경문제부터 치안까지 다양한 공공서비스 분야가 망라돼 인공지능(AI) 기술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첨단 혁신기술들이 활용될 수 있다. 이 123조원 규모의 공공조달이 얼마나 혁신친화적으로 이뤄지는가에 따라 산업혁신 생태계에 큰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중요성을 감안해서 선진국들도 혁신지향적 공공조달을 암묵적인 산업정책 수단으로 쓰고 있다.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혁신지향 공공조달 정책은 ‘혁신 뉴딜정책’이다.

기업성장지원 효과를 논하기 전에 정부효율성을 높여 차원 높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혁신지향 공공조달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다. 매일같이 접하는 환경, 치안, 복지, 규제, 공공인프라, 행정서비스의 수준은 국민 삶의 질과 직결돼 있다. 수준 높은 공공서비스는 도전적 혁신생태계를 뒷받침하는 보이지 않는 핵심 인프라이기도 하다. 국민과 기업은 세금을 낸 만큼 좋은 공공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고, 정부는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아껴 쓰면서 더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혁신적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혁신지향 공공조달 정책의 1차적인 목표는 더 좋은 공공서비스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혁신지향 공공조달 정책은 공공서비스 개혁도 하면서 부가적으로 혁신기업의 스케일업(scale up) 위험도 분담해주는 일석이조 효과가 있다. 이것은 재정을 더 쓰는가, 덜 쓰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재정운용의 목적과 방식에 관한 문제다. 즉, 기왕 쓸 재정이라면 혁신지향적으로 써서 1차적으로 재정절감과 공공서비스 개선의 효과를 거두고, 혁신기업을 키우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자는 것이다.

의욕적으로 출발한 혁신지향 공공조달 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공부문의 도전적 문제 출제역량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또 혁신적 공공조달을 이끄는 실무담당자와 전문가들이 적극행정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호하고, 기관에는 인센티브를 확실히 줘야 한다.

혁신지향 공공조달 정책은 산업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큰 의미가 있지만, 시행착오를 금기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두려움 가득한 담대한 도전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격려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