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회사 감사 금지…"맞벌이 그만둬야 하나" 회계사들 부글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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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시행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벌써부터 혼란
과도한 회계사 직무제한 논란
과도한 회계사 직무제한 논란
▶마켓인사이트 7월 3일 오후 3시35분
A회계법인에서 파트너(임원) 승진을 앞둔 김모 회계사는 최근 상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아내가 다니는 직장이 A회계법인의 감사 대상이 됐으니 감사계약 기간인 향후 3년간은 파트너를 달기 힘들 것이란 내용이었다. 15년을 회계법인에서 일하며 파트너가 되기를 꿈꿔온 김 회계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일정 연차 이후 파트너가 되지 못하면 회사를 나가는 관행에 따라 퇴사해야 할지, 아내에게 직장을 관두라고 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맞벌이를 하는 회계사들이 과도한 직무제한 규제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내년부터 정부가 기업의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을 강제 지정하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시행을 앞두고 직무제한 규제에 걸리는 사례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법 위반을 우려한 회계법인들이 지정받은 기업에 대한 감사를 거부하는 등 감사인 지정제가 시행 첫해부터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회계사 직무제한 해도 너무해”
3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삼일회계법인, 삼정KPMG, 딜로이트안진, EY한영 등 4대 회계법인은 최근 소속 파트너들의 배우자 직업과 직장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다. 내년 감사인 지정제 시행을 맞아 직무제한과 관련한 공인회계사법을 위반할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공인회계사법에 따르면 회계법인은 사원(지분 보유 파트너)의 배우자가 현재 또는 과거 1년 이내 고용관계에 있는 회사의 감사업무를 할 수 없다. 직무연관성이나 직책과는 관련없이 회계법인 파트너 전체, 피감사법인 임직원 전체에 적용되는 규정이다. 회계 또는 재무 관련 일을 하고 있는 배우자 등으로 직무 범위를 한정하고 있는 미국에 비해 훨씬 폭넓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얼마 전 한 회계법인 파트너의 배우자가 그 회계법인이 감사하는 기업의 전산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을 감독당국에서 지적하면서 논란이 일었다”며 “회계사와 배우자 모두 해당 감사업무와 연관이 없는 직무를 하고 있는데도 법을 위반했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시행되면 혼란이 커질 전망이다. 회계법인이 어떤 기업을 맡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감사 대상을 강제 할당하기 때문이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6년간 자율 선임하면 이후 3년간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감사인을 지정받는 제도다. 내년에 자산 규모가 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생명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등 220개 회사가 지정받는 데 이어 1900여 개 기업에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직원 수가 많은 대기업일수록, 파트너 수가 많은 대형 회계법인일수록 법 위반 가능성이 높아진다.
회계법인이 감사를 맡기 1년 전부터 직무제한 규정이 소급 적용되는 것도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할당으로 기업 감사를 떠맡은 회계법인 파트너의 배우자가 지정 직후 해당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도 과거 고용관계로 인해 법 위반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한 회계법인 파트너는 “현행 법상으로는 배우자가 근무하는 기업 감사를 우리 회계법인이 맡게 된다면 내가 퇴사하거나 아니면 이혼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혼이라도 하란 말이냐”
규제 대상인 파트너뿐 아니라 젊은 회계사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앞으로 직급이 올라가면 얼마든지 직무규제에 걸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맞벌이가 늘고 여성 회계사가 증가하고 있어 갈수록 더 많은 회계사가 규제 대상이 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일각에선 직무제한을 비롯한 독립성 규제로 감사인 지정제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대형 회계법인 임원은 “대기업은 중소 회계법인에 감사를 맡기는 데 한계가 있어 4대 회계법인에서 소화해야 할 것”이라며 “한두 곳이라도 재지정을 요구하면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회계사 배우자의 직무제한 범위를 회계, 재무 관련으로 축소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 정상화가 늦어지면서 금융감독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하는 11월 전에 개정안이 시행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A회계법인에서 파트너(임원) 승진을 앞둔 김모 회계사는 최근 상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아내가 다니는 직장이 A회계법인의 감사 대상이 됐으니 감사계약 기간인 향후 3년간은 파트너를 달기 힘들 것이란 내용이었다. 15년을 회계법인에서 일하며 파트너가 되기를 꿈꿔온 김 회계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일정 연차 이후 파트너가 되지 못하면 회사를 나가는 관행에 따라 퇴사해야 할지, 아내에게 직장을 관두라고 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맞벌이를 하는 회계사들이 과도한 직무제한 규제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내년부터 정부가 기업의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을 강제 지정하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시행을 앞두고 직무제한 규제에 걸리는 사례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법 위반을 우려한 회계법인들이 지정받은 기업에 대한 감사를 거부하는 등 감사인 지정제가 시행 첫해부터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회계사 직무제한 해도 너무해”
3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삼일회계법인, 삼정KPMG, 딜로이트안진, EY한영 등 4대 회계법인은 최근 소속 파트너들의 배우자 직업과 직장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였다. 내년 감사인 지정제 시행을 맞아 직무제한과 관련한 공인회계사법을 위반할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공인회계사법에 따르면 회계법인은 사원(지분 보유 파트너)의 배우자가 현재 또는 과거 1년 이내 고용관계에 있는 회사의 감사업무를 할 수 없다. 직무연관성이나 직책과는 관련없이 회계법인 파트너 전체, 피감사법인 임직원 전체에 적용되는 규정이다. 회계 또는 재무 관련 일을 하고 있는 배우자 등으로 직무 범위를 한정하고 있는 미국에 비해 훨씬 폭넓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얼마 전 한 회계법인 파트너의 배우자가 그 회계법인이 감사하는 기업의 전산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을 감독당국에서 지적하면서 논란이 일었다”며 “회계사와 배우자 모두 해당 감사업무와 연관이 없는 직무를 하고 있는데도 법을 위반했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시행되면 혼란이 커질 전망이다. 회계법인이 어떤 기업을 맡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감사 대상을 강제 할당하기 때문이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6년간 자율 선임하면 이후 3년간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감사인을 지정받는 제도다. 내년에 자산 규모가 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생명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등 220개 회사가 지정받는 데 이어 1900여 개 기업에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직원 수가 많은 대기업일수록, 파트너 수가 많은 대형 회계법인일수록 법 위반 가능성이 높아진다.
회계법인이 감사를 맡기 1년 전부터 직무제한 규정이 소급 적용되는 것도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할당으로 기업 감사를 떠맡은 회계법인 파트너의 배우자가 지정 직후 해당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도 과거 고용관계로 인해 법 위반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한 회계법인 파트너는 “현행 법상으로는 배우자가 근무하는 기업 감사를 우리 회계법인이 맡게 된다면 내가 퇴사하거나 아니면 이혼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혼이라도 하란 말이냐”
규제 대상인 파트너뿐 아니라 젊은 회계사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앞으로 직급이 올라가면 얼마든지 직무규제에 걸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맞벌이가 늘고 여성 회계사가 증가하고 있어 갈수록 더 많은 회계사가 규제 대상이 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일각에선 직무제한을 비롯한 독립성 규제로 감사인 지정제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대형 회계법인 임원은 “대기업은 중소 회계법인에 감사를 맡기는 데 한계가 있어 4대 회계법인에서 소화해야 할 것”이라며 “한두 곳이라도 재지정을 요구하면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회계사 배우자의 직무제한 범위를 회계, 재무 관련으로 축소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 정상화가 늦어지면서 금융감독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하는 11월 전에 개정안이 시행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