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지나쳤던 성벽·풍광…다시보는 로마 답사기
뭐든지 아는 만큼 보인다. 여행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주마간산 격으로 휙 하고 돌아보는 여행도 그 나름의 멋이 있지만, 착실히 준비한 여행은 정말 많은 것을 선물해 준다. 로마처럼 큰 비용을 들여 방문한 곳이라면 ‘이곳에서 찰칵, 저곳에서 찰칵’만 하는 여행을 하기엔 너무 아깝다. ‘훌륭한 가이드북이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충족시켜줄 책이 나왔다. 뛰어난 필력의 작가로 명성을 가진 인문학자 김상근 연세대 교수의 《나의 로망, 로마》(시공사)는 제대로 된 여행 안내서다. 어디서 무엇을 봐야 할지 그리고 그곳에서 무엇을 주목해야 하는지를 깊숙이 다룬 일종의 로마 답사기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꼭 로마 여행을 가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책은 아니다. 로마를 알고 싶은 욕구나 로마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과 함께 피서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마치 독자들과 함께 로마의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설명과 대화를 겸하듯이 책을 준비했다. 발길이 닿는 유적지에 어울리는 고전 작품을 소개하고, 그 장소에 얽힌 역사를 되살려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성벽·풍광…다시보는 로마 답사기
이런 배경 지식 없이 역사 유적지를 방문하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큰 돌 혹은 작은 돌일 뿐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별다른 지식 없이 포로 로마노를 방문한 사람들은 세월의 풍파를 이기지 못한 대리석 잔해를 구경하는 데 그칠 것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배경 지식으로 무장한다면 권력의 질주와 독점을 막기 위한 로마 공화정의 난제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역사의 현장이 다가올 것이다.

책은 모두 3부 15장으로 구성된다. ‘로마왕정과 공화정의 시대’ ‘로마제국의 창건과 흥망성쇠’ ‘중세 로마와 제국의 부활. 르네상스’가 각각 다섯 장으로 구성된다. 저자의 책 구성을 보면 로마의 수많은 유적지 가운데 꼭 방문해야 할 곳은 15군데다. 필자는 청년기, 중년기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로마를 방문했지만 로마의 중심인 테르미니 역 맥도날드 매장 안에 세르비우스 성벽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길게 줄을 선 채 주문한 햄버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 곁에 2400년 전 세르비우스 왕이 세운 세르비우스 성벽의 잔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 일이다.

누군가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면 이런 고대 성벽도 방문자의 눈에는 그저 로마의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는 돌담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책의 곳곳에서 저자의 해박한 고전 지식들이 유적지의 풍광과 적당히 버무러진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제공된다. 여행하면서 고전의 내용을 접할 수 있고 고전에 대한 정보까지 취득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다. “제 로망은 은퇴하면 로마에 가서 사는 것입니다.” 삶은 유한하고 우리가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 자신이 소망하는 곳에 살아 보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한마디로 어디로나 휴가를 떠나도록 돕는 책이다.

공병호 < 공병호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