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는 손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이 부회장의 주선으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은 앞서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도 만난다.
이 부회장과 손 회장은 각별한 사이다. 두 사람은 매년 7월 열리는 글로벌 비공개 최고경영자 모임 '선밸리 콘퍼런스'에서 정기적으로 만난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과 손 회장이 일본에서 가끔 만나 골프도 함께 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이번 회동은 서울에서는 2016년 9월 이후 공식적으로 2년10개월 만에 갖는 것이다. 당시 이 부회장은 손 회장과 삼성 서초사옥에서 2시간여 동안 시스템 반도체 분야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메모리 반도체(기억장치)와 달리 시스템 반도체(연산 및 설계장치) 분야에선 삼성전자가 후발주자다.
이 부회장이 손 회장을 특히 신경 쓰는 것은 시스템 반도체에서 영국 반도체 회사 ARM의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7월 손 회장의 소프트뱅크가 320억달러(약 37조원)에 ARM을 인수했다. ARM은 전세계 정보기술(IT) 기업에 모바일 반도체 기술의 '밑그림'을 파는 회사다. 반도체 생산설비 없이 설계도만 만들어서 판매한다고 이해하면 쉽다. 퀄컴·애플·화웨이 등 전세계 1000여개 기업이 ARM 반도체 설계도를 토대로 각자 맞춤형 제품을 만든다.
삼성전자도 예외가 아니다. 갤럭시의 '두뇌' 역할을 하는 모바일 반도체(AP) '엑시노스'에 ARM 설계도를 가져다 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매년 ARM에 천문학적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RM의 강점은 스마트폰에 특화된 저전력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것"이라며 "ARM의 모바일 프로세스 설계도가 시장 표준처럼 쓰인다"고 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스마트폰 두뇌 역할을 하는 AP의 약 90%가 ARM 설계도로 만들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 설계에 필요한 지적 재산권(IP) 협력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IT 기업들 사이에선 "ARM이 거래를 끊으면 '식물 기업'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마저 존재한다. 워낙 의존도가 크기 때문. 최근 ARM이 미·중 무역분쟁으로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선언하자 미 IT 매체 와이어드는 "화웨이가 구글 없이 생존할 순 있어도 ARM 없이는 끝장"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ARM은 영국 회사지만 미국 기술 및 부품 비중이 25% 이상인 제품의 경우 미국 정부 제재를 받는다는 규정에 따랐다. IT 업계에선 화웨이가 ARM 설계도 없이 자체 설계도만으로는 스마트폰의 AP를 만들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글로벌 IT기업들은 ARM과 협력하는 한편 대체 거래선을 만들거나 독자 설계도 제작에 힘 쏟고 있다. 애플은 2017년부터 그래픽칩(GPU) 독자 개발을 추진해 양산형 모델을 내놨다. 삼성전자도 지난달 미국 반도체 회사 AMD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ARM 설계 기반으로 만든 엑시노스 GPU가 약점으로 지적돼 이를 보완하기 AMD를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인엽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은 최근 열린 간담회에서 "AMD와 모바일에 들어가는 GPU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5년 안에는 나온다"고 소개했다.
이날 회동에는 이 부회장뿐 아니라 정 부회장, 구 회장까지 참석하는 만큼 반도체 외에도 5세대 이동통신(5G),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등에 대한 협력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손 회장의 투자 리스트를 보면 최대 관심사는 인공지능(AI)과 모빌리티 같다"면서 "현대차와 LG전자도 관련 연구개발(R&D)을 하는 만큼 각 분야 사업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자리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