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의 '치커리 커피', 한국에도 있었다
블루보틀의 시그니처 메뉴 중 ‘뉴올리언스’(사진)라는 게 있습니다.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지인에게 소개했는데, 그의 반응이 재미있었습니다. “이거 깔끔한 다방커피네.”

뉴올리언스 커피에는 ‘치커리’가 들어갑니다. 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쌈채소 치커리, 맞습니다. 콜드브루 커피에 우유, 비정제당을 넣어 만드는데 핵심은 구운 치커리랍니다. 이를 우려내면 쌉싸름하면서 구수한 맛을 낸다고 하네요.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탄생한 블루보틀은 왜 저 멀리 동남부 뉴올리언스의 지명을 커피 이름으로 썼을까요?

뉴올리언스에는 157년 역사의 명물 카페 ‘카페 뒤 몽드’가 있습니다. 미국 치커리 커피의 원조 카페로 불립니다. 치커리 커피의 시작은 1700년대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에 커피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나폴레옹은 영국 경제에 타격을 주기 위해 ‘대륙봉쇄령’을 내립니다. 교역 통로가 막히게 되자 커피 대용품을 찾던 영국 사람들이 치커리 가루를 물에 타 마셨다고 합니다. 1750년께 네덜란드에서도 커피에 부과하는 세금이 치솟자 치커리 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치커리가 200년 이상 대용 커피로 사랑받았습니다. ‘여성들의 사교 음료’로 커피가 사랑받던 1777년, 독일 정부가 커피 금지령을 내리자 서민들은 치커리에 의지했다는 것이죠.

치커리 커피가 미국으로 건너간 건 약 100년 뒤. 남북전쟁 때입니다. 남군이 점령하고 있던 뉴올리언스를 북군이 공략하면서 강을 봉쇄했고, 배가 끊겨 커피가 사라지자 치커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1862년 치커리 커피로 문을 열었던 카페가 바로 카페 뒤 몽드. ‘블루보틀 뉴올리언스’가 시작된 곳입니다.

치커리 커피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커피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건 1945년 이후. 1950~1960년대까지 연간 400t의 커피가 유통됐습니다. 물론 수입 금지 품목이어서 대부분 불법 수입된 것들이었죠. 1960년대 후반 수입 제한이 풀렸어도 관세가 높다 보니, 다방 등에서는 커피라고 팔면서 커피 원두 대신 구운 치커리 가루를 많이 넣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임산부들의 커피 대용품으로, 카페인이 없어 몸에 좋은 대안 커피로 각광받고 있는 치커리 커피. 블루보틀의 뉴올리언스가 입맛에 딱 맞는다면 아마 오래전부터 치커리 커피를 먹어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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