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스마트계약·전자투표·가상화폐…세상을 바꾸는 블록체인
조선시대 실록은 4~5곳에 분산돼 보관됐다. 중요한 기록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임진왜란 때 사고(史庫) 세 곳이 불탔지만 나머지 한 곳이 무사히 보존돼 조선시대의 기록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블록체인, 플랫폼 혁명을 꿈꾸다》는 블록체인을 이처럼 이해하기 쉬운 예로 설명한다. 저자가 말하는 블록체인의 핵심이 ‘데이터 분산 관리 기술’이다. 최근 서점가에 쏟아진 블록체인 관련 책과의 차별점이 여기에 있다. 어려운 용어를 쓰지 않는다. 블록체인의 개념을 사례 중심으로 설명한다.

이 책은 경제학에서 화폐 기능을 공부하기에 좋은 교과서이기도 하다. 블록체인 기술이 활용되는 가상화폐와 법정화폐를 비교하고 있어서다. 가상화폐를 개발한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법정화폐가 중앙권력의 입맛대로 찍어낸 돈인지에 관한 고찰도 들어 있다. 하지만 저자는 가상화폐를 블록체인의 본질인 것처럼 다루는 일부의 접근법과는 거리를 둔다.

기획재정부에서 일하고 있는 저자는 거시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블록체인에 그대로 적용했다. 블록체인을 제조업 중심인 한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바라본다. 여기서 말하는 플랫폼이란 구글, 아마존과 같은 기업이 수행하는 역할을 뜻한다. 서비스와 상품을 중개하는 인프라다. 동영상 콘텐츠가 유통되는 유튜브도 대표적인 플랫폼이다.

저자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플랫폼 서비스의 예를 제시한다. 스마트 계약이다. 자동차 매매 계약을 종이로 작성하면 여러 가지 위험이 있다. 매도인이 계약금만 받고 사라질 수 있다. 잔금까지 다 치렀는데 차 주인이 따로 있고, 서류도 가짜일 수 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계약은 이런 위험이 없다. 블록체인에선 계약 전후로 당사자의 은행 잔액 변화, 자동차 소유주의 변경 등이 모두 기록된다. 기록이 분산돼 있어 계약서 위조도 불가능하다.

블록체인은 전자투표 시스템에도 적용될 수 있다. 투표 결과 조작이 불가능해서다. 에스토니아는 국회의원 선거, 유럽의회 선거 등에 블록체인 기반 전자투표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올해 3월 시행된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전체 투표자의 44%가 전자투표시스템을 활용했다.

하지만 저자가 블록체인 세상을 장밋빛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좋은 서비스로 많은 참여자를 모을 수 있어야 하고, 블록체인 경제의 최종 목표는 인류 보편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데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